JTBC의 <내 집이 나타났다>는 최근 모든 예능 중에서 창의성이 가장 떨어지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예능은 과거 일밤의 러브하우스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출연했던 건축가 양진석까지 그대로 볼 수 있으니 뭔가 새롭다는 느낌보다는 러브하우스의 추억에 더 무게를 둔 것이라고 볼 수밖에는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예능은 일단 착하다. 물론 절대적으로 착한 것은 아니다. 누가 보기에도 부러운 새집을 갖게 되는 행운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기 집이 있어야 한다. 전세대란의 기억이 생생하지만 아쉽게도 세입자는 이 행운에 발을 담글 수 없다. 오로지 자기 집이 있지만 그 집이 집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대상이 될 뿐이다.

집을 지어줄 정도라면 집을 주는 것은 왜 안 될까 싶은 마음도 없지 않지만 그걸 따지는 것은 좀 무리한 생각이 앞선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그게 어딘가 싶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이 생겨났다가 언제 사라지는지 모르게 없어지는 소모성 예능이 얼마나 많은데, 몇 가족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면 이만한 예능도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JTBC <내 집이 나타났다>

굳이 이런 종류의 예능에 과한 이성을 앞세워 비판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비가 세고, 쥐가 돌아다니고, 건물 밖의 화장실을 오가야 하는 집이 있다면 무조건 돕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새집이 사연자들의 평소 생활과 맞지 않다는 비판도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쨌든 사연자들에게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 누구에게도 받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일생일대의 큰 선물을 받은 기쁨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매주 열 명 가량의 행운의 주인공이 태어난다지만 사실 그것조차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기 어렵다. 그 행운을 소문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작은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조금은 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사연자들의 형편에 너무 동떨어진 첨단 기능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등의 문제는 자칫 이 예능의 착한 의도를 잠식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에 PPL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너무 과한 의욕은 과연 그 새집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올 수도 있다.

JTBC <내 집이 나타났다>

실제로 건축가 양진석에게 새집에 대한 기능이나 옵션에 대해서 매회 출연하는 스타들이 집요하게 매달리는 콘셉트를 너무도 뻔하게 유지하고 있는데, 사실 그것은 스타가 아니라 집주인에게 양보했어야 할 결정적 부분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라는 점이 아쉽다. 실제로 거주할 사람들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집 근처에 올 수도 없다.

정말 어떻게든 좋은 선물일 수밖에는 없는 새집 장만 프로젝트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이 정도라면 조금은 오만한 선행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훨씬 더 감동적이겠지만 조금은 낡은 방식의 설정은 아닌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연자들이 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할 것 같다는 의견도 무리는 아니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때는 이 프로그램의 취지와 의도를 의심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좀 더 사연자 중심의 건축이 될 수 있도록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 만약 시즌2를 하게 된다면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것이 선함의 목적에 더 충실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다는 것들도 다만 호사가의 시선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이런 행운을 주는 일이 더 많아지면 더 좋은 일 아니겠는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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