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을 두고 타이밍이 적절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7일 정상모 방문진 이사가 여당 추천 방문진 이사들의 ‘방송 섭정’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방문진의 과도한 경영간섭으로 MBC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이날 방문진 이사회에서 독자 미디어렙을 설립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미디어렙 논의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MBC경영진이 ‘1사, 1렙’을 들고 나온 것이다.

▲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미디어스
‘방문진이 개입과 간섭이 아니라 오히려 MBC가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켜내는데 일조해야 한다’는 정 이사의 주장은 경영진의 ‘1사, 1렙’ 공식 천명 이후 더 이상 회자되지 않았다. 일회성 이벤트로 묻혔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공영방송MBC는 ‘요즘 MBC는 김우룡이 사장이고, 엄기영이 이사’라는 굴욕적인 현실과 함께 ‘1사, 1렙’이라는 자사 이기적인 정책 결정이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MBC의 ‘1사, 1렙’ 방침이 단지 여당 추천 이사들의 방송 섭정의 결과라고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MBC경영진은 ‘1사, 1렙’ 추진 이유를 민영방송인 SBS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김종국 MBC 기획조정실장은 이날 방문진 이사회에서 “공영을 할 경우 SBS와의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민영방송 SBS와 경쟁을 강조하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분위기다. 코바코라는 공적 체제를 통해 성장했던 MBC가 이런 공적 틀을 버려야 할 이유로 SBS와의 경쟁을 강조하는 대목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생존과 발전의 기회를 찾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방송광고 시장 변화가 가져올 미디어 격변에 대한 고민까지 당부하지는 않겠다. 다만 ‘1사, 1렙’은 사실상 MBC의 민영화를 촉진하는 조치인데 이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어떻든 MBC경영진이 ‘1사, 1렙’ 정책 결정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지역MBC의 반발을 넘어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MBC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지역MBC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이들은 8일 성명을 통해 “'1사, 1렙'은 공영방송MBC 지키기의 포기 선언”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입법권을 쥐고 있는 정치권의 기류 변화도 MBC경영진에게는 심상치 않을 것 같다. MBC가 ‘1사, 1렙’을 결정했다지만 어디까지나 정치권의 동의가 있어야 현실화될 수 있다. 그러나 MBC경영진의 정책 결정과는 달리, 국회 문방위 소속의 민주당, 한나라당 공히 ‘1사, 1렙’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특히 MBC경영진이 ‘1사, 1렙’ 방침을 방문진에 보고했던 7일 오후 11시경, 국회 문방위 나경원 한나라당 간사는 방통위 국정감사가 끝나는 무렵 미디어렙 논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1사, 1렙’은 방송사 영업국과 다름없다”면서 “종합편성채널이 활성화되기 전까지 ‘1사, 1렙’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최구식 의원도 “헌재 결정은 코바코 독점이 문제라고 한 것이지 약육강식으로 센 놈만 살고 약한 놈은 죽으라고 한 것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1사, 1렙’은 중앙 광고 쏠림 현상이 발행하며 특정방송사에 광고를 집중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계속됐다. 여기서 특정방송사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물론 SBS도 포함될 수 있지만 정확하게는 MBC일 것이다. MBC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게 백기투항하지 않는 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통설이 과연 이명박 정부에서 통용될 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MBC경영진의 우군은 최시중 방통위원장 밖에 없다는 점이다. 방송광고 시장 완전 경쟁을 고집하는 최시중 위원장과 ‘1사, 1렙’의 MBC경영진, 과연 최 위원장이 정명을 바로 세우라고 한 요구가 관철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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