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키보드를 두드리느라 손가락이 고달픈 국감 기간. 그래도 국감에서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이 많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즐겁게 취재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정감사란 여야가 정부의 공과를 낱낱이 밝혀내고 감시하는, 국회만의 고유한 권한이 아니던가.

기자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맞이했던 지난해 문방위 국감은 현 정부의 언론장악과 관련해 연이어 밝혀지는 내용들 때문에 롤러코스터 타는 것만큼이나 '스릴 만점'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한마디로 '재미없다'. 문화부, 한예종, 방통위, 방통심의위 등의 국감이 끝난 지금까지 나온 내용 중 '청와대의 통신사 기금 압박' 외에는 별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취재하러 가면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내 속으로 '지겹다'며 절규하고 있다.

▲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문방위 국감 모습 ⓒ곽상아

올해 문방위 국감이 재미없는 이유중 하나는 야당 파이터로 꼽히던 최문순,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금뱃지를 던지고 거리로 나섰기 때문일 것이다.

경실련이 선정한 지난해 '국감 우수의원'으로 꼽히기도 했던 최문순 의원은 현정부의 언론장악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해 몇가지 성과들을 올렸다.

최 의원은 구본홍 YTN사장이 임명되기 전에 박선규 청와대 비서관과 만났음을 밝혀내 정권이 YTN사장 인선에 직접적으로 개입했음을 보여줬으며, KBS 후임사장 논의와 관련한 '8.17 KBS대책회의'가 "KBS 후임 사장으로 김인규는 안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베이징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 문제도 최 의원에 의해 제기된 것이었다. 천정배 의원 역시 중진의원다운 노련함으로 국감의 핵심쟁점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들의 빈자리로 인한 전력손실을 감안하더라도, 피감기관에 대한 확실한 공격과 소재 발굴이 눈에 띠지 않는 것은 아쉽다.

7일 방통위 국감에서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청와대의 통신사 기금 압력'에 대해 "케이블TV 초기에 케이블 협회가 300억이라는 기금을 모금했고, 현재 협회가 그 기금의 이자돈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느냐. 당연히 이통사들이 IPTV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돈을 내야 한다고 본다"며 "이통사들이 마케팅 비용으로 1년에 6조원 이상씩 쓰는데 이 비용의 1%만이라도 IPTV활성화 기금으로 마련할 수 있지 않느냐. 이번 일에 대해 비판하고 문제삼는 사람들은 IPTV산업을 활성화 안해도 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IPTV산업 활성화'라는 당위를 앞세워 '청와대의 통신사 기금 압력' 건을 옹호한 것이다.

그런데 정 의원의 해당 발언에 대해 야당 의원들은 별로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 것일까? 3시간 가량의 보충질의 시간에서 이 부분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한 의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정병국 의원에 이어 질의한 조영택 민주당 의원이 발언시간 내내 IPTV산업에 대한 과도한 정부지원 등을 지적하다가 말미에 "통신사가 이익을 많이 남기니까 협회에 기금 좀 수백억 내면 어떠냐는 건 동의하지 않는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결정타의 부재' 덕분에 피감기관 수장도 별로 긴장하지 않는 분위기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한 야당 의원의 계속되는 질의에 "방송에 안나오니 그만 하시라"는 느긋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문방위 국감을 보면, 행정부의 '과(過)'에 대한 폭로가 거의 나오지 않는 탓에 지금 미디어, 문화계가 '태평성대'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 정부의 언론장악은 이제 완성형에 가까워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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