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림 ‘기자’라고 대뜸 부르려니 한 번은 목에 걸립니다. 신 기자께서야 그리 여기시지 않겠지만, 나이와 경력의 위계가 아직 삼엄한 한국 언론계 풍토에서는 호칭 하나로도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할 일이 더러 생깁니다. 그런데 신 기자를 신 기자라고 부르고 나니 새삼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기자를 기자라고 부르기 어려운 건 홍길동이 호부호형 할 수 없는 것보다 더 이상하지 않은가? 제가 신 기자께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입니다. 굳이 ‘연서’라고 이름붙인 건 신 기자께서 제게 해맑은 마음을 ‘전염’시켰기 때문입니다.

해맑은 마음이란 어떤 걸까요? 살면서 몇 번이나 경험해보셨습니까? 저는 연애 감정이 먼저 떠오르는군요. 그 감정은 불같이 뜨거우면서도 모든 사물을 해맑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매우 특수한 마음의 상태입니다. 뜨거울수록 순전한 불꽃의 이치처럼 말입니다. 세상이, 우주만물의 운행 질서가, 그 마음 하나로 한꺼번에 새로워지는 거지요. 저는 그 비슷한 감정을 처음 기자가 되었을 때도 얼핏 느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기자는 평생 똑같은 기자로 살 뿐”이라는 신 기자의 말씀이, 오래 잊고 지내온 예의 그 감정을 들쑤셨던 겁니다.

▲ 미디어스 11월9일자 '사고'
그때 기자가 된다는 건 왜 그리 가슴 설레는 일이었던지요. 눈에 익은 사물들 하나하나가 달리 보였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기자면 다 같은 기자일 뿐, 기자 이상도 기자 이하도 없다고 여긴 것도 당연했겠지요. 처음 기자가 되어 또 하나 놀란 건, 생각보다 기자가 엄청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기자가 되기 전 대한민국의 한 젊은이는 기자들의 일(취재)과 관련해 교집합은커녕 접촉면, 심지어 가냘픈 선 한 가닥조차 닿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많은 기자들이 다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걸까요?

신문사에 몇 번 항의 전화를 건 적은 있었습니다. 대학생 수천명이 경찰에 쫓겨 서울의 어느 대학 교정 안에 며칠째 갇혀 있는데, 대부분 언론이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공중전화통을 붙들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기자는 묵묵히 듣기만 하다 끊더군요. 그땐 그 기자의 품성을 탓했습니다. 기자가 되고서야 알았습니다. 그 기자 개인 탓이 아니라는 것을, 기자들이 저와는 구조적으로 격절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기자들은 이 사회에 보편적으로 편재(遍在)하지 않고, 특정하게 편재(偏在)하고 있었던 겁니다.

신 기자께서 <미디어스>의 평기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무렵, 때마침 저는 (저 자신을 포함해) 기자라는 존재를 깊이 회의하고 있었습니다. 금융사기 연루를 방증하는 숱한 증거들을 사기꾼 한 사람의 농간으로 환원하는 거야 현재진행형의 사건인 만큼 어쩔 수 없다고 치지요. 그러나 차떼기의 장본인이자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로또 당첨 확률보다 낮은) ‘우연의 연속’으로 해명한 인물의 대선 재출마는 기자로서 자괴감을 피해갈 수 없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번트를 그라운드 홈런으로 만들어주는 아홉명의 수비수 심정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다른 복잡한 심내와 셈법을 개입시켜 그의 출마를 비난하는 언론이야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속악한 짓을 일삼는 ‘일부’ 동업자들까지 탓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양식 있는 ‘대부분’ 기자들이 이 사태와 어떻게 닿아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져주기 게임을 기획한 것도 아닌데 번트성 그라운드 홈런을 당하는 것만큼 심각한 문제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필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신 기자 소식을 들었고, ‘모든 기자가 평생 똑같은 기자로 살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인가’라는 물음에까지 가닿게 되었습니다.

신 기자의 말씀은 기자의 일대기에 관한 지배담론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초년 시절 사건기자 할 때 듣는 얘기가 뭡니까. “이걸 제대로 해야 네가 원하는 출입처에 갈 수 있다(군대를 다녀와야 남자 구실을 할 수 있다)”입니다. 이 언설은 ‘기자는 평생 똑같은 기자가 아니다’라는 가치관을 노출하는 것이며, 기자사회 내부의 위상차(하이어라키)를 전제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기자질은 더 높은 기자로 가기 위한 ‘경로’일 뿐입니다. 나아가, 누구라도 그 위상의 사다리를 타야 하는 것입니다, 좋든 싫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도 낳아야 합니다.)

그 사다리가 기자에겐 정작 종속의 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자신의 출입처에 따라 위상이 정해진다면 변기 물통 속에 떠있는 부레와 다를 바 없는 처지 아닙니까. 물이 떠올려주는 만큼만 상승하는 그 하얀 구체(球體). 이는 권력에 의해 ‘관리’될 때라야 비로소 ‘기자 권력’이 형성되는 역학구조를 은유합니다. 권력이 관리하려는 기자는 의외로 숙맥 기자가 아닙니다. 칼잡이 기자는 더욱 아니지요. 그저 앙칼진 기자입니다. 권력은, 끝장을 보려고 덤비지는 않되 적당히 비판적인 기자를 권력의 투명성을 드러내는 용도로 전시합니다.

기자의 ‘인정 투쟁’도 그런 관계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일 잘 한다고 안팎에서 인정받는 기자의 전형입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 속에서 기자는 권력을 공략할 수도, 낙후시킬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권력을 확대 재생산합니다. 권력이 치명상을 입는 일은 거의 없으며, 비판받을수록 맷집만 강해집니다. 번트 대고 그라운드 홈런도 노려볼 만합니다. 차떼기 장본인도 유력후보라면 기자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경마 보도, 캠페인 보도, 동정 보도까지 해줘야 하니까요. 물론 비판 기사와 적절히 비율을 맞추는 건 필수입니다. 그래야 더 높은 기자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기자의 생애주기가 지배담론이 되고, 그 주기에 맞춰 기자의 욕망이 특정한 일부 권력에 편재(偏在)한다면, 기자가 아무리 많아도 이 사회는 기자 부족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개그 프로그램의 시답잖은 상황에서 “기자 불러”라는 대사가 넘쳐나더라도, 권력이 없는 이들의 현실 상황에서 기자는 아무리 다급해도 와주지 않는 존재일 겁니다. 대선 정국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제손으로 줄줄이 목숨을 끊고, 노동자·농민들의 집회 자유는 공권력의 불법행위로 유린되지만, 기자들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연애편지란 본디 비약, 감정 과잉이 특징입니다. 이 글은 틀림없는 연애편지인가 봅니다. 끝없이 화젯거리만을 좇는 상업언론의 기본속성을 기자 개인들 탓으로 돌려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에 내면화된 집단욕망은 개인 차원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신 기자의 취업이 개인 차원으로만 보이지 않는 까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몇 해 전 “우리가 지율 스님을 살려내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가 이라크 파병을 막아내야 하지 않겠느냐”며 제게 울분을 토하던 후배들의 해맑고 형형한 눈빛이, 지금 무척 그립습니다. 신 기자를 바라보며, 그들과 더불어, 평생 똑같은 기자로 살고 싶습니다.

1993년 <한겨레>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줄곧 사회부 쪽에서 일했다. 지금은, 사상 초유의 정파(停波) 사태를 겪고 눈물겨운 투쟁 끝에 새 방송을 시작하는 OBS경인TV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모든문제연구소장’을 자처하고 산다. ‘쿨하다’를 날씨 상태에 대한 표현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송진처럼 끈적한 386의 시대적 아비튀스에 갇혀 있지만, 일상의 억압에 관한 미시담론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