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자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을 하나 꼽자면, ‘모든 취재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기사거리가 되지 않아 ‘킬’(언론계 은어, 보도하지 않는다는 뜻) 되는 경우도 있고, 당초에 계획했던 방향과 전혀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인터뷰에 응한 취재원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 속을 태우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마다 ‘취재 과정에서 이미 되돌릴 수없는 일에 대해선 곱씹되, 자책하지는 말자’는 것이 나의 평소 생각이나, 이번 일은 이렇게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

지난 18일, 왕복 7시간 정도를 버스에서 보냈다. 취재를 위해 강원도에 갔지만 ‘비공개 세미나’라는 이유로 취재를 거부당했고, 발제문만 손에 쥔 채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연합뉴스 미래 전략’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는 한국언론학회 주최, 연합뉴스 후원으로 18일 오후 3시30분부터 6시30분까지 강원도 양양 쏠비치호텔에서 진행됐다.

연합뉴스 세미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17일 오후다. 법원을 다녀온 뒤 YTN 관련 기사를 쓰고 있는 나에게 한 선배는 세미나 공지가 인쇄된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이상하다’는 말도 함께 했다. 세미나 주제가, 언론계 안팎의 이슈인 보도전문채널 진출을 공식 선언한 연합뉴스임에도 취재가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강원도 양양이라는 점, 한국언론학회 홈페이지 공지를 제외하고 알림 및 홍보가 없다는 점, 발제문은 세미나가 끝난 뒤에 공개된다는 점 등 때문이었다.

편집국 내부에서 논의한 결과, 이러한 부분만 가지고 쉽게 의문을 제기하거나 섣불리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직접 현장에서 연합뉴스와 관련한 어떠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지를 지켜본 뒤 기사화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취재하기로 결정됐다.

▲ 9월18일 오후 강원도 양양 쏠베치호텔에서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연합뉴스 미래 전략' 이라는 주제로 비공개 세미나가 진행됐다. ⓒ송선영

18일 오전에 출발한 버스가 3시간 정도 달렸을까, 오후 2시30분 쯤 양양에 도착했다. 으리으리한 호텔에 도착한 뒤 노트북을 켜고 취재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나자 토론회 주최 쪽과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하는 교수들, 연합뉴스 관계자들이 나타났다.

나를 본 연합뉴스 관계자는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그때 내가 받은 솔직한 느낌을 덧붙이자면, ‘어떻게 강원도까지 취재하러 왔냐’는 식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에 ‘취재하러 왔다’고 했더니, 관계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이 세미나는 비공개 세미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서는 “왜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았냐. 연락을 했다면 비공개라는 점을 알렸을 것이고, 그렇다면 굳이 강원도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공개 세미나’를 강조하는 관계자를 향해 세미나를 열게 된 이유에 대해 묻자, “어느 회사든지 회사 전략에 대해 모색하지 않나. 언론법이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리고 있지만 개정 이후 연합뉴스의 방향을 포함해 다각도로 논의하기 위해 세미나를 열게 된 것”이라며 “보도전문채널 진출을 포함해 사업 전략 등에 대해 공개하기 부담스럽기에 비공개로 툭 털어놓고 깊이 있는 논의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공개로 세미나를 진행하는 다른 의도는 없다고 했다. 연합뉴스를 둘러싼 여러 시각이 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조용히 세미나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결국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혼자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은 먹히지 않아 토론회가 시작되기 20분 전, 발제문 한 부를 들고 다시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현장에 취재를 위해 온 기자는 없었다. 연합뉴스 강원지역 사진기자와 동영상 담당 기자가 있었으나, 당초 연합뉴스 관계자는 취재 목적이 아닌 ‘자료를 남겨두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후,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연합뉴스도 보도를 하기로 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민감한 사안이기에 보도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약 한 시간 만에 입장이 바뀐 셈이다.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실장의 ‘뉴스미디어 시장의 변화와 연합뉴스의 역할’, 최영재 한림대 교수의 ‘멀티미디어 시대, 뉴스통신사의 뉴스채널 방안’ 등의 발제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서 참석한 이들은 무엇을 논의했을까. 새로운 언론 환경에서 연합뉴스가 어떤 전략을 세워야 더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을지를 논의했을까 아니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더 탄탄하게 보도전문채널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지를 논의했을까. 최영재 교수는 연합뉴스의 대표이사 및 이사를 추천하고 예산의 승인, 경영 감독 등을 수행하고 있는 뉴스통신진흥회의 이사이다.

▲ 연합뉴스 사옥 ⓒ미디어스

현재 방송 진출을 공식화 한 연합뉴스를 두고, 언론계 안팎에서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지난 4월30일 정부의 연합뉴스에 대한 지원을 보장하는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뉴스통신진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매년 정부로부터 3백억원 정도의 예산을 지원받지만 ‘보도가 친 정부쪽으로 기울었다’는 등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어 조심스럽다’는 연합뉴스 쪽의 입장은 충분 이해하지만, 그래도 자못 아쉽다. 방송 진출을 공식화 한 시점에서, 비공개로 논의하기 보다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접하는 것이, 비판을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부딪쳐 더 나은 미래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적어도 ‘모양새’ 측면에서라도 말이다.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현재로선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연합뉴스의 관련 보도가 나오긴 했지만, “이런 측면에서 연합뉴스의 보도채널 진출 시도는 당연한 것” “이런 상황에서 뉴스통신진흥법을 통해 국가기간통신사로서 공적 위상을 갖춘 연합뉴스가 큰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보도로 짐작했을 때 비판보다는 자화자찬하는 자리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과거, 내가 두 차례 연합뉴스 보도와 관련한 비판 기사를 썼을 때, 연합뉴스 관계자들은 이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당시 기사를 본 현직 연합뉴스 기자들은 ‘어떻게 이렇게 기사를 쓸 수 있냐. 연차도 많지 않은 거 같은데 젊은 기자가 이렇게 써도 되냐’는 등 본질과 상관없는 비난을 전화로 서슴없이 퍼부었다. 왜 비평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은 채 ‘왜 연합뉴스를 헐뜯기만 하냐’는 식의 논리만 되풀이 했다. 이에 이러한 일들 수없이 겪은 언론 담당기자들 사이에서 ‘연합뉴스는 원래 그런 곳’으로 유명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