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하고 참신한 TV 토론 개최, 약속하라 -

KBS와 MBC는 12월 1일과 2일, 양일간에 걸쳐 두 방송사의 주관으로 '대선후보 합동토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두 방송사는 이에 따라 토론회 초청 대상 후보 측에 '토론회 참석 요청 공문'을 보냈다. 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현 시점까지 후보들이 함께 TV 토론에 나선 적이 없다는 점에서 두 공영방송이 주관하는 이번 '합동토론회'는 반길만한 일이다.

문제는 두 방송사가 초청대상으로 정한 후보 기준이다. 두 방송사는 '후보 등록일 전일부터 3주 이내에 공표된 중앙언론사의 조사 결과 여론조사 지지율 10% 이상의 후보’로 기준을 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이회창 무소속 후보에게 토론회 참석을 요청했다.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만 초청해 이른바 '빅3 합동토론회'를 개최하겠다는 것이다. 초청 대상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참석을 거부한다면 두 명만으로도 TV 토론을 진행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당연히 토론회에서 배제된 후보 측에서는 강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측은 "공영방송의 본분을 망각한 채 시청률을 의식한 어처구니없는 처사"라며 "두 공영방송이 기득권 카르텔의 음모에 놀아나지 말 것을 간절하게 촉구"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측에서도 "국민들의 판단과 선택을 제한하는 일종의 불공정 선거"라며 "후보에 대한 정보 판단의 기준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서 공정방송 기본 태도에서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리 단체는 TV 토론에서 배제된 이들 후보 진영의 비판이 당연한 것이라 판단한다. 신문과 방송 가릴 것 없이 언론들로부터 소외당하고 ‘찬밥 신세’ 취급당하기 일쑤인 진보․소수 후보가 TV토론에서조차 배제된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그들의 정책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제시할 것인가. '돈은 막고 입은 풀자'면서 여기저기서 '미디어선거'를 하자고 떠들고 있지만 실상은 '유력후보들만의 미디어선거'가 몇 년째 굳어져 오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과 현실을 감안해 '2~3명의 후보'를 초청해 진행하는 TV 토론을 마냥 반대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우리 단체는 지난 몇 차례의 대선과 총선 등에서 선거방송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그 과정에서 TV 토론의 경우 형식과 내용이 혁신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대여섯 명의 후보자가 한꺼번에 출연해 시간적 제약 속에서 진행되는 TV 토론이 인물 검증과 정책 검증에 있어 얼마나 유용한 지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 후보들이 돌아가며 2~3분 동안 정견 발표를 하고, 후보들끼리 1~2분의 상호 토론을 펼치는 정형화된 TV 토론으로는 각자의 정책만 간단히 주장할 수 있을 뿐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기 버거웠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후보자들이 저마다 알쏭달쏭한 이야기만 쏟아내는 100여분이 유권자인 시청자들에게 지루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다. 우리 선거에서 처음 TV 토론이 이뤄졌을 때는 그것 자체만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지만, 갈수록 시청자들의 관심과 집중도는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유권자인 시청자들이 직접 패널로 참여하는 TV 토론, 각 분야 전문가들이 특정 주제에 따라 후보자의 정책을 집중적으로 검증하는 TV 토론, 2~3명 후보자의 '맞짱 토론' 등 다양한 형식의 TV 토론이 대안으로 제시돼 왔다. 특히 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TV 토론은 현실적 한계로 당장 변화를 꾀하기 어렵겠지만,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주관하는 TV 토론의 경우 형식과 내용에 있어 자율성을 최대한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두 방송사가 3명의 후보자를 초청해 진행하기로 한 '합동토론회'가 일정 부분 그 동안 지적되어온 문제를 보완하는 TV 토론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 단체는 이번 두 공영방송 주관의 TV 토론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두 방송사가 예정하고 있는 <빅3 합동토론회>라는 명칭을 바꿔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10% 이상이라고 하여 '유력후보'라거나 심지어 '빅3'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선거 구도를 고착화시킬 우려가 크다. 특히 선거를 20일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두 공영방송이 이틀에 걸쳐 프라임 시청시간대에 '빅3 합동토론'이라는 제목을 걸고 TV 토론을 진행한다는 것은 유권자들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토론에서 배제된 후보 진영에서 ‘불공정 선거’라고 반발하는 게 당연하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런 가치 판단을 가지지 않는 <'이명박-정동영-이회창 초청' 3자 합동 토론회> 정도가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만약 끝내 방송사들이 '빅3'라는 제목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TV 토론의 기획의도가 오로지 '시청률'에 기댄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둘째, 이번 TV 토론이 '여론조사 지지도'라는 명분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수준에 따라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기준의 TV 토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비록 지지도는 낮지만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경청해야 할 주장과 정책을 들고 나온 후보들이 유권자들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가령 이회창 후보의 출마로 보수 진영의 분열이 주요한 변수가 된 만큼 보수 진영 내부의 의견 차이를 시청자들이 알 수 있도록 '이회창-이명박-심대평' 후보 초청토론회를 한다든지, 반대로 위기에 처한 진보개혁 진영 후보들의 대안을 집중 점검하는 '정동영-문국현-권영길' 후보 초청토론회 등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번 TV 토론에서 배제된 후보들과 함께 두 공영방송을 규탄하고 '빅3 합동토론회'를 반대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벌일 것이다. 우리가 제시한 조건은 '공정 선거'를 위하고, '유권자 알권리'를 위한 당연한 요구다.

KBS·MBC 두 공영방송이 진정 공영성을 추구한다면 우리 단체의 요청을 상식선에서 받아들일 것으로 우리는 기대한다.

2007년 11월1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2007 대선 민언련모니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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