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항상 특별하다. 그렇지만 그날은 좀 더 특별했다. 2016년 4월 27일. 앵커브리핑은 때 아닌 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워치독, 랩독, 가드독. 이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언론관련 단어들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언론들이 대통령과 정권에 대해서 비판을 하기 시작했던 갑작스런 변화에 대한 고통스러운 일갈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JTBC였기에 할 수 있었다. 손석희였기에 그 앵커브리핑의 의미가 무겁게 전달될 수 있었다. 그 후로 9개월이 지났고, 해도 바뀌었다. 달라진 것은 너무도 많다. 비선실세에 의해 꾸려지던 권력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직격탄을 맞아 무너졌고, 모처럼 시민사회는 승리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워치독·랩독·가드독…"나는 길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언론은 그 후로 얼마나 달라졌을까. 확실히 랩독은 자취를 감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가드독이다. 차라리 랩독은 다루기가 쉽기라도 하겠지만 가드독은 쉽지 않다. 그렇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이 손석희가 9개월 전의 앵커브리핑을 다시 소환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또 다시 가드독에 대해서 말하는 손석희 앵커에게서는 긴장이 서려 있었다.

가드독이 건재하다는 것은 그 폐해 역시 그렇다는 의미다. 손석희 앵커 뒤 스크린에 등장한 포스터 한 장이 있다.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12일 개봉한 다큐영화이다. 영화를 소개하는 손석희 앵커가 어느 순간 울컥하는 것을 겨우 참는 모습도 보였다. 공식적으로 화도 내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앵커는 세월호에 이어 이번에 다시 울먹였다.

“누군가는 암과 싸우고 있고, 누군가는 다른 생업을 찾아냈고. 결국 아직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독립된 나라에서 독립운동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라는 대목이었다. 이 말의 함의가 바로 8개월 전의 앵커브리핑을 다시 소환한 이유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워치독·랩독·가드독…"나는 길들지 않는다"

분명 세상은 달라졌다. 물론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잔존한다. 여전히 역사의 방향을 틀 요인은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것은 촛불광장의 외곽에서 목격되는, 왠지 익숙한 풍경이 주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6월항쟁 이후 민주진영의 대실패를 가져왔던 대권경쟁의 난맥상이 재연될 기미가 보이고 있는가 하면, 참으로 절묘하게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다. 87년인가 싶은데 반 총장의 귀국에서는 묘하게도 1945년 이승만의 귀국 장면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많은 이들의 의견이 그랬다.

또 다른 반복도 있다. 2012년의 박근혜 후보가 했던 말 그대로를 2017년 대권 도전에 나서는 반기문 총장이 한 것이다.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 정권교체는 쉽게 알겠는데 5년 전에도 지금도 정치교체는 무엇을 말하는지 명확치가 않다. 그 모호함 속에 숨기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적어도 정권교체가 화두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워치독·랩독·가드독…"나는 길들지 않는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라고 한 것처럼 2017년에도 한국에 진행 중인 역사는 정권교체와 개혁이라는 도전과 그 시대정신에 맞서는 퇴행의 응전이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라도 이 충돌의 결과를 강제할 수는 없다. 이제 역사는 격동에서 잠시 혼돈의 시기를 맞고 있다. 여기에서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모두가 워치독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드독들은 건재하고, 태세전환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은 결정된 것이 전혀 없다. 이날 <뉴스룸>의 클로징 음악이 ‘It Ain't Over 'Til it's Over'였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것이 아니다, 정도로 해석될 것이다. 앞서 ’독립된 나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은 바로 워치독이다. 권력에 길들지 않고, 권력을 탐하지도 않고 독립된 나라에서 독립운동하듯 정론직필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본연의 언론, 워치독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퇴행의 완력은 아직도 건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워치독을 말한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왠지 다른 때보다 긴장되고 또 엄숙해 보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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