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SNS와 각종 커뮤니티를 달군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사진은 좁은 복도에 아이돌 가수들이 일렬로 도열해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사진에 딸린 설명은 음악프로 녹화가 끝나고 피디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대기 중이라는 것이었다. 사진 한 장은 어떤 상황을 완전하게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그렇지만 이 사진이 좋게 보이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한 해에 수십 팀의 아이돌이 데뷔하는 환경에서 방송에 노출되지 않고서는 좀처럼 뜨기 어려운 현실은 이런 장면을 갑질로 오해하기에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물론 이것은 갑질이 아니고, 피디와 아이돌들이 서로 인사하며 수고했다는 말을 주고받는 훈훈한 장면이라는 입장도 없는 것은 아니다. 소위 사회생활의 일면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제작진이 이런 상황을 요구했다고는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피디의 의사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관행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위력이 작용된다는 의심을 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조폭들도 아니고 아이돌들이 한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아이돌들이 피디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녹화 전에 사전 리허설에도 하고, 일부러 찾아가서 하기도 한다. 하루에도 이미 여러 번의 인사를 했었을 상황이다. 그런데도 녹화 일정이 끝났다고 모든 아이돌들이 복도에 나와서 인사를 하기를 위해서 대기하는 모습은 단지 예의 때문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요즘 아이돌들은 사실 예전에 비해서 많이 바쁘긴 하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뮤뱅 출근길이라는 제목의 사진과 영상들이 엄청나게 공유되고 있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편한 복장으로 향했을 녹화길이 분명 더 번거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신들을 기다리는 팬을 향한 일종의 팬서비스이고, 또한 홍보 효과도 있기 때문에 감수할 만한 수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의 제작진을 위해 좁은 복도를 빼곡히 채운 아이돌들의 하염없는 기다림은 팬서비스도 아니고, 홍보도 아닌 그저 을의 굴욕적인 처세로 보일 뿐이다. 이런 관행이 21세기에도 버젓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개탄스럽기만 하다. 이에 대한 음악 프로그램 제작진의 분명한 해명이나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며, 다시는 이런 구태가 연출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 또한 필요할 것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만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한다.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까지 음악방송에서 똑같은 풍경이 연출된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음악 프로그램들의 잘못된 관행들을 드러내고 고쳐야 할 것이다.

문제는 하다 더 있다. 대부분의 음악방송이 순위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조건이 마련된다고도 볼 수 있다. 과연 1위 축하를 위해서 모든 출연 가수들이 끝까지 대기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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