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광장이 열렸다. 그 광장에 등장한 피켓에는 “이게 나라냐”라는 문구가 가장 흔했고 또 가장 공감이 갔다. 검찰수사가 시작되었다. 한계가 있을 거란 검찰수사는 역시나 그 한계를 드러냈지만 그래도 예상보다는 열 일한 흔적은 남았다. 그리고 이어진 특검은 과로라는 말도 사치랄 정도로 일단은 열정적이다.

그러나 이상한 말이 떠돌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설마 했다. 아니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바람이었다. 7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고발했다.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서 최순실을 몰랐다고 극구 부인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엘리트의 민낯 - 우병우 전 수석과 청와대 비밀노트’ 편

<그것이 알고 싶다>가 입수한 당시 청와대 경호실 간부의 업무노트 11쪽의 내용은 충격, 경악 등의 단어들로는 부족했고, 분노와 절망은 따라서 더 짙어질 수밖에는 없었다. 일단 그 노트에는 ‘최순실-101단 통제 경찰관리관 101단장 교체’라는 문구가 있었다. 우병우 전 수석이 전혀 알지 못했다는 이름이 당시 경호실 간부의 노트에 적혀 있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겁다.

그 문제는 특검이 해결해야 할 것이고, 일단 방송에 의해 드러난 사실은 그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과거 조선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이 삼정의 문란과 함께 매관매직이었다. 매관매직과 삼정의 문란이 깊은 연관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돈 주고 벼슬을 샀으니 백성의 고혈을 빨아 본전을 채우고 또 다른 상납을 위해 또 부정을 저지르는 악순환이다. 공무원의 인사에 비리가 결부되면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엘리트의 민낯 - 우병우 전 수석과 청와대 비밀노트’ 편

봉건시대가 아니라 20세기가 아니라 스마트 시대라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사정이다. 그 노트에는 인사 청탁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는데, 대상이 고위직은 물론이고 하위직까지 범위가 대단히 넓다는 것이 눈에 띠었다. 소위 고위직에 대해서는 암암리에 인사 청탁이 있을 거라는 소문과 의심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하위직 심지어 청와대 경호를 맡은 101경비단와 22경찰경호대 보직까지 청탁에 의해 배치됐다는 것은 보고도 믿지 못할 내용이었다. 이 두 곳은 경찰내부에서 승진이 빠르다고 한다. 누구나 바라는 보직이 아닐 수 없지만 그보다는 대통령 경호에 합목적적인 인사가 지켜져야만 한다. 하긴 보안손님이 수두룩하니 경호의 의미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진짜 심각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경찰 공채시험의 조작을 의심할 만한 내용이 그 노트 안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매우 구체적으로 수험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엘리트의 민낯 - 우병우 전 수석과 청와대 비밀노트’ 편

지금 이 순간에도 노량진 고시촌에서는 각종 공무원 시험을 위해 청춘을 접고 공부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들에게 이 사실이 어떤 좌절과 자괴감을 줄지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만일 그 노트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가시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국가에서 치르는 시험만은 공정해야 한다. 도전과 비전을 가져야 할 청년들이 안정이라는 보수적 선택에 매달리는 불행한 현실이기에 더욱 그 공정성은 엄격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마저 무너진다면 국가의 안정은 위험수위를 넘게 된다.

이래도 헬조선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 헬조선의 모든 조건과 환경을 만든 장본인들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자학이라고 했다. 후안무치도 정도를 넘은 것이다. 이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는 것이다. 국정농단이라는 어려운 말을 쓸 필요도 없다. 이렇게 말단 공무원까지도 청탁이라는, 인맥이라는 부정과 비리의 때가 탔다면 이건 나라가 아니다. 그런 와중에 경찰은 1월 7일 촛불집회와 친박단체집회 인원을 이상하게 발표해 논란이 됐다. 그 이유도 알 것 같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엘리트의 민낯 - 우병우 전 수석과 청와대 비밀노트’ 편

그런데 <그것이 알고 싶다>는 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경찰인사 문제로 결론을 끌고 갔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그것은 <그알>의 매우 영리한 포석일 것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2015년 1월 비서관에서 수석으로 승진을 했고, <그알>이 입수한 노트의 장본인은 2015년 2월부터 그해 말까지 청와대에서 근무를 했다. 그래도 또 몰랐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그 부인과 무관하게 법적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해 12월 17일에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라는 제목으로 대통령 5촌 간 살인사건을 다뤘다. 1월 7일의 방송은 우병우 전 수석을 겨냥한 동시에 의혹투성이의 그 사건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복선이 보인다. <그알>이 뭔가 큰 그림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그 완성될 그림이 기대가 되면서 동시에 불안하다. 얼마나 더 어둡고 추한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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