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에도 기사는 넘쳐났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미디어오늘에 게재된 기고문(경찰에 정유라를 신고한 JTBC 기자, 어떻게 볼 것인가)으로 덴마크에서 정유라를 경찰에 신고하고, 이후 상황을 취재한 JTBC 기자에 대한 비판이었다. 한 마디로 저널리즘 원칙에 벗어난 행동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친절하게 번호까지 매겨가며 저널리즘 수호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기사였다.

이 기사의 주장은 두 가지로 추려낼 수 있다. 기자는 참여자가 아니라 관찰자여야 한다는 것과 정유라를 신고했다면 취재는 포기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원론적으로는 반박할 논리가 많지 않아 보인다. 또한 원칙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딜레마라는 편이 더 맞을지 모른다는 전제를 해둔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그리고 또 하나의 기자 모습이 겹쳐진다. 1월 1일, 요즘 기자들로서는 필수 장비인 카메라와 노트북 심지어 휴대폰까지 지참하지 못한 어떤 간담회. 너무도 갑작스러운 통보여서 복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변명이 흘러나왔지만 그들을 향한 비난을 피할 방패는 되지 못했다. 전투에 무기를 두고 간 병사를 변명할 이유란 없기 때문이다.

취재원과 취재기자 사이에도 공정한 룰이 필요하다. 기자가 비서가 아니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치열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백악관 브리핑룸의 풍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국정농단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 앞에 대통령이 일방적인 담화만 읽고 돌아서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던 청와대 출입기자단.

3차 담화에 가서야 그 중 딱 한 명의 기자가 “질문 있습니다”를 용기 있게 외쳤다. 대통령은 돌아서서 나중에 할 것을 약속하고 돌아섰다. 물론 그 약속은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켜지지 않았다. 만약 그때 그 자리에 있던 기자 전원이 “질문 있습니다”를 외쳤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1월1일의 기묘한 간담회는 없지 않았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연합뉴스 ]

경호원들의 거친 방어를 뚫고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최승호 피디가 던진 말이 있다. “기자의 질문을 막으면 나라가 망합니다”였다. 이 말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자가 질문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로 말이다. 실제로 9년의 질문을 잃은 언론은 나라가 망해가는 걸 그냥 구경하고 있었을 뿐이다.

1월 1일 직무정지 당한 대통령의 불법이 무척이나 의심되는 간담회에, 기자로서 무장해제를 거부하지 않은 채 두 손 모으고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어준 청와대 출입기자단 역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기자단 전원도 아니었다고 한다. 선택받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을까? 아직까지도 한국의 기자들은 질문을 못하고 있다.

자, 이런 언론의 풍토에서 저널리즘의 원칙이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지난 9년간 한국의 저널리즘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질문은 고사하고 의문조차 품지 않았거나 혹은 정권의 확성기로 전락했었다. 오죽하면 기레기라는 말이 기자라는 말보다 더 일상적으로 다가오게 됐겠는가.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오늘이 제기한 저널리즘의 원칙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기자가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 말이다. 머리로는 분명 그렇지만 가슴이 거부하는 것이 문제다. 정유라를 덴마크 경찰에 신고하고 또 취재를 한 JTBC 기자가 저널리즘의 원칙 혹은 딜레마에 대해서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리스크를 알고 결정을 했을 것이다. JTBC 기자라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앞서 청와대 기자단을 언급한 이유를 설명하자. 기레기라 불리는 한국의 저널리즘은 이미 넘어서는 안 될 무수한 저널리즘의 원칙을 넘었다. 가장 보편적이고 치명적인 것이 권력에 부역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부터 JTBC는 많은 언론이 부역했던 그 권력과 애써 싸우고 있다. JTBC에게 이 시국은 저널리즘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것은 시민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절실한 문제다. 많은 국민이 죽었고, 그 진실을 찾아달라고 목 놓아 울부짖는 세월이 곧 천일이 된다. 한두 달도 아니고 3년이다. 슬픔이 감정이 아닌 통증이 되는 그 사람들 앞에서 저널리즘이란 어떻다고 말할 수 있다면 군말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은 단지 한가로운 논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문제를 제기한 기자는 “아무도 넘어서지 않았던 선을 넘었고, 열지 않았던 문을 열었다”면서 “문이 한 번 열리면 그리로 쓰레기가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다”라고 주장했다. 우선 '개입'의 문만 보고 다른 문은 보지 않는 선구안이 아쉽다. 지난 9년 간 이미 언론의 문을 통해서 엄청난 쓰레기가 쏟아졌고 그럼에도 건강한 저널리즘은 존재했음을 끝으로 말해주고 싶다.

사족) 1월 3일 JTBC <뉴스룸>의 클로징 뮤직은 Coldplay의 ‘Viva LA Vida'였다. 뉴스룸은 자주 시와 음악을 통해 뭔가를 전달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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