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를 내정했다. 당 대표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정우택 원내대표는 인명진 목사를 내정한 이유로 “2006년 당 윤리위원장으로서 당 윤리강령 강화를 통해 보수정당의 두 축인 책임정치와 도덕성을 재정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평생동안 보여준 강한 소신과 올곧은 신념을 바탕으로 새누리당을 완전히 혁신하고 당의 대통합을 이끌어 새로운 보수세력 건설과 정권재창출에 굳건한 기반을 만들 것으로 확신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연 정우택 원내대표가 말하는 것처럼 상황이 돌아갈지는 의문이다. 인명진 목사는 과거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최태민 목사 문제를 직설적으로 물은 경력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새누리당이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 변화를 감당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인명진 목사도 최순실 등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위증 교사 의혹을 받은 이완영 의원을 징계하겠다고 발언해 이런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출당조치까지도 인명진 비대위 체제가 감당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아무리 전권을 준다고 해도 인명진 비대위 체제가 친박계의 통제를 벗어나서 움직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당장 새누리당의 마지막 보루인 ‘집토끼’ 층에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 반발은 인명진 목사가 단지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편’이 아니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인명진 목사가 과거 몸 담았던 도시산업선교회의 활동과 이후 민주화 운동 경력 등이 문제라는 것이다. 박사모 게시판에는 “차라리 이석기를 데려오라”는 비아냥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집토끼’의 이반을 걱정해야지 정우택 원내대표가 말하는 ‘혁신과 대통합’을 위한 무슨 조치를 힘있게 시행할 수 없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내정된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혁보수신당을 만든다는 비박계 인사들이 탈당한 이후에는 ‘혁신과 대통합’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만일 인명진 비대위 체제가 정권재창출을 위한 효과적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친박계 핵심인사들에 대한 인적청산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이정현 전 대표나 ‘좌장’ 소리를 듣는 서청원 의원 정도는 이 대상에 반드시 포함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친박계가 바로 이걸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새누리당은 분당의 위기에 처해있다. 지금 필요한 게 ‘혁신’뿐 아니라 ‘대통합’이라는 것은 이 대목에 관한 이야기다.

아마 친박계가 인명진 비대위 체제를 통해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귀국 이후 추가 탈당을 막는 정도일 것이다. 비박계는 현재도 원내교섭단체 이상의 인원을 데리고 탈당할 수 있으며 반기문 사무총장이 귀국할 경우 추가 탈당을 통해 원내 제2당도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권주자가 없는 새누리당으로는 국회의원들의 미래가 보장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충청권 인사인 정진석 전 원내대표 등이 반기문 사무총장이 오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건 이런 원리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돌아와서 무엇을 할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지금 시점에서 보면 크게 세 가지 경로를 상상해볼 수는 있다. 첫째는 독자세력화, 둘째는 비박계가 추진하는 개혁보수신당 참여, 셋째는 이른바 ‘친박 친문을 제외한 제3지대 논의’에 참여이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 등의 이른바 중도파 인사들은 바로 이때에 반기문 사무총장과 행보를 같이 하려 계획할 것이다.

그러나 인명진 비대위가 당 개혁을 잘해서 어느 정도라도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비박계가 주도하는 개혁보수신당의 동력을 약화시킨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게 친박계의 계산일 것이다. 만일 반기문 사무총장이 여전히 잔류 새누리당에 올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추가 탈당을 말하는 중도파들의 행보에도 제동을 걸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반기문 사무총장 영입에 그야말로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인명진 목사의 고향은 충남 당진으로 알려져 있는데 부산 출신인 정우택 원내대표의 지역구가 충북 청주시상당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충청권 지도부라고 말할 수 있다.

인명진 목사는 비대위원장 수락에 대해 언급하며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일단 보수정당 난립의 문제를 최종적으로는 개헌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개헌을 전제하면 장기적으로 연립정권이 가능한 관계 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반기문 사무총장의 행보가 중요하다. 대권주자로서의 반기문 사무총장을 어떤 시나리오에 집어넣느냐에 따라 개헌의 형태와 이후 정계개편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권재창출’ 관련 구상들은 듣기에는 그럴듯할지 몰라도 현재의 새누리당으로서는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최대한의 희망적인 전망을 해볼지라도 앞에서 언급한 친박 핵심들에 대한 인적청산이 전제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인명진 목사는 인적청산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본인들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명진 목사는 신당을 창당한다는 비박계들에 대해 원내대표 선거에 져서 나가겠다는 것에는 명분이 없다며 말려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승민 비대위원장 카드가 거부된 것은 친박계가 인적청산을 약속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명진 목사와 친박계가 정계은퇴나 탈당이 전제되지 않은 친박 핵심들의 ‘2선후퇴’ 정도로 상황이 수습되리라 믿는다면 그것은 완전한 착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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