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권의 후안무치에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는 지경이다. 22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조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태도를 보니 그렇다. 우병우 전 수석은 국조특위원들의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질문에도 전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인정 못 한다’고 대답했다. ‘나쁜 놈’ 보다는 ‘무능한 놈’이 되는 게 조금이나마 덜 책임을 지는 길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언론의 의혹제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수언론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보도하거나 칼럼 등을 통해 언급했다. 우병우 전 수석은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이른바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 이후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당시 김영한 민정수석을 거르고 우병우 민정비서관과 직통라인을 만들어 사건에 대응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언론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현직 검찰에 비해 경력이 적고 나이가 어린 우병우 전 수석을 배려해 이명재 전 검찰총장을 민정특보로 붙여줬다고도 했다.

이렇게 등에 날개를 단 우병우 전 수석이 인사권을 좌지우지하며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을 권력의 ‘노예’로 만들었다는 게 언론이 전하는 내용의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우병우 전 수석을 견제하기 위해 기득권 세력 내부에서도 치고받는 다툼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이 고비마다 손을 들어주면서 우병우 전 수석은 이른바 비선실세의 ‘이너서클’에 들어가게 됐다고도 한다.

이렇게만 보더라도 각 의혹의 세부적인 진상은 별건으로 하더라도 우병우 전 수석이야 말로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최순실 씨의 ‘힘’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최근에 제기된 것을 보면 상황은 더욱 명확하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5차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직자는 헌법의 가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일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있다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나와 상세히 해명하고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우병우 전 수석은 최소한의 사실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문제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있다. 국회에 나오는 것 자체를 회피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는 법률적 책임을 떠나 공직을 맡았던 사람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라고 볼 수 없다.

한 마디로 하자면 이른바 ‘퍼블릭 마인드’의 문제다. 우병우 전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느냐는 질문에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진정성을 믿기 때문에 존경한다”고 답변했다. 여기서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대목이 ‘퍼블릭 마인드’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의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한 게 아니라 자의적으로 권력을 위임해 다른 사람의 이권을 챙기도록 했다는 것이다.

우병우 전 수석은 이 의혹과 관련한 증언을 하러 국회에 나왔다. 그런데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진정성을 믿기 때문에 존경한다”면서 제대로 된 증언은 하지 않는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것에 우병우 전 수석이 어떤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결국 국민의 시각으로는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진정성을 믿기 때문에 존경한다”는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권력’이기 때문에 존경하는 거라고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이에 앞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증인 출석에서도 같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오만함’이나 ‘건방짐’이라는 주관적 판단의 영역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태도는 우병우 전 수석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그러나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모른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것은 마찬가지다. 도저히 모른다고 잡아뗄 수 없는 수준의 증거를 접하고 나서야 “나이를 먹어 착각했다”고 변명했다.

김기춘식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것은 그의 배우자가 언론을 통해 했다는 말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청문회를 마친 후 귀가해 “박영선 등에게 크게 당했다”는 취지의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국민의 시선으로 보면 이해를 할 수 없는 발언이다. 자신이 진실을 감췄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을 창피해하지는 못할망정 ‘당했다’고 하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당했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졌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세계관에서는 헌정 유린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인 것이다.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자신들과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불순 세력과의 대결구도만이 존재할 뿐이다. 당위와 명분을 따지는 게 아니라 오로지 힘과 힘의 대결로만 통치는 이뤄진다는 식의 인식이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기만적 세계관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박근혜 대통령을 대리하는 인사들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공개된 박근혜 대통령의 답변서는 헌법과 현행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억지로 가득 차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언론을 통해 화제가 된 것은 맥락이 잘못된 ‘연좌제’에 대한 규정 등인데, 이 답변서에는 이외에도 법률전문가들이 쓴 것이 맞는지 의심할만한 대목이 다수 있다. 국회 탄핵소추위는 이런 취지의 반론을 명시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이런 무리수를 둔 것에 대해 결국 ‘시간끌기’를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구심을 표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측은 국회가 답변서를 공개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가 하면 헌법재판소가 특검과 검찰에 수사자료를 요청한 것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는 등 ‘지연작전’으로 볼 수 있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우병우 전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진정성을 믿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것만 보더라도 그런 진정성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하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조기에 탄핵심판을 마무리 지어야만 한다. 경제적 위기 상황을 목전에 두고 있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누가 국정을 책임지는지 불명확한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는 게 가장 나쁜 시나리오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 가장 나쁜 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우병우 전 수석은 일이 이렇게 된 데 대한 진상을 밝히려는 국회의 노력을 외면하고 있다. 이러니 애초부터 나라를 다스릴 자격이 없었던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다시 한 번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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