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진 및 MBC 방문진 이사진을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호가 정비돼야 한다. 허울 뿐인 방송사 이사 공모제가 이명박 정부에서도 반복돼선 안 된다.”

이는 과연 누구의 발언일까? 최근 불거진 ‘방문진 이사 내정설’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 아니면 야당의 규탄 발언?

▲ 김우룡 외국어대 명예교수

아니다. 이는 다름아닌 ‘내정설’의 주인공으로 꼽히고 있는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2008년 6월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했던 주장이다. 1968년 MBC 공채1기 PD로 입사해 16년간 재직하다 이후 20년 넘게 방송학자의 길을 걸어온 김 교수는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의 퇴진을 직접적으로 촉구했다.

당시는 1990년 KBS 민주화운동 이후 18년만에 서울 여의도 KBS본사에 경찰력이 투입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신태섭 KBS이사가 탈법적으로 해임되는 등 ‘정권의 KBS압박’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 ‘특정 정치권력의 코드’로 인해 사장이 된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이 그동안 편파 방송을 해왔다는 게 퇴진 촉구의 이유였다. 김 교수는 인터뷰에서 정 사장 퇴진이 현실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매우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 “부인하지 않겠다. 다만 그 문제는 (정권에 의한) 정 사장의 퇴진이 방송 독립성의 위축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김 교수는 사실상 ‘내정제’로 운영되는 방송사 이사 공모제를 비판하며 공영방송 이사진이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임명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공이 국민의 이익과 부합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적대시할 필요는 없겠죠”라며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을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그는 ‘특정 정치권력의 코드’로 인해 이사장 내정이 거의 확실시된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 인사. 그렇다면 그는 학자로서의 소신을 저버린 ‘내정’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을까?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 내정설’은 그가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한나라당측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몇달 전부터 이미 언론계에 파다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는 방문진 이사 공모마감일인 지난 16일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접수 여부를 묻는 질문에 “타천으로 접수됐다”며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열심히 할 것이라는 것 뿐”이라고 이사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낼 뿐이었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두번째 회의가 열린 3월 20일, 김우룡 한나라당측 위원장이 회의 시작 직후 취재기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퇴장할 것을 요구하자 강상현 민주당측 위원장이 급히 마이크를 빼앗아 ‘회의공개’를 주장하고 있는 모습 ⓒ곽상아

이러한 이중적 행태 외에 그가 방문진 이사장이 되는 것을 우려하는 대표적 이유는 ‘MBC 민영화’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MBC 민영화’에 대해 그는 지난해 7월 뉴라이트방송통신정책센터 주최 토론회에서 “MBC 지방사를 매각해 정수장학회 지분을 다 사들인 뒤 국민주 60%, 방문진 30%, 사원주주 10%로 재편해 민영화를 완성하자”는 구체적 대안까지 제시한 바 있다.

그가 민영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MBC가 공영방송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100%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등 불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데다 노동조합이 경영권에까지 개입하며 ‘편파방송’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정부 및 여당의 논리와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국민들도 김 교수를 비롯해 정부·여당처럼 MBC가 민영화돼야 한다고 생각할까? 지난해 9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오픈엑세스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자동응답시스템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MBC 민영화 추진에 ‘반대’ 의견이 49.4%로, ‘찬성’(23.8%) 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

지난해 3월 한국기자협회가 전국 언론사 기자 250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을 벌인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52.8%가 MBC민영화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6.2%) 일반 국민과 전문가 둘다 부정적 여론이 높은 것이다. 사실 김 교수가 ‘편파방송’이라고 생각하는 MBC의 방송콘텐츠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기계적 중립보다는 진실을 위해 애쓰는 방송’으로 환호받는 등 ‘공영성’을 충분히 잘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오랫동안 언론운동에 몸담은 모 대학 교수는 “방문진은 MBC가 공영방송의 역할을 하게끔 하는 장치인데 이런 곳의 수장으로 민영화를 대표적으로 주장해왔던 이가 들어오려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이라며 “김 교수는 미디어발전국민위 활동 내내 여론조사 등 국민의 요구를 전혀 수용하지 않고 자신을 추천한 한나라당의 입장만을 대변해온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전 정부에서는 방문진 이사 자리가 지금처럼 주목받지 못했다”며 “방문진 이사에 친정부 인사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현 정부가 MBC의 방송 구조를 개편시켜 (MBC를) 장악하려함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언론계 원로도 김 교수에 대해 “특정정파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해온 인물이 이사장이 된다면, 방송의 공공성·공정성 보다 정권의 입장만을 무분별하게 대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명박 정부의 ‘따까리’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는 민언련이나 언개련의 대척점도 아니에요. 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언론 관련 정책을 지적하는 동시에 현 정부의 언론정책도 비판할 거예요. 공언련은 언론의 ‘공정성’ 향상을 지향합니다.”

이 역시 공정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인 김 교수가 지난해 11월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뿐 아니라 현 정부의 언론정책도 비판하며, 언론의 공정성만을 지향하겠다”는 공언과 달리 김 교수는 숱한 ‘언론장악’ 논란을 일으킨, 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충실히 수행해왔을 뿐이다. 과연 그가 MBC 사장 선임 및 경영전반의 관리·감독권을 쥔 최고 의결기구의 수장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앞으로 공영방송 MBC에 가해질 난도질이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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