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할 일이 천지로 널렸지만 분노만이었다면 광장은 달랐을 것이다. 분노에 분노를 더하는 2017년이었지만 시민들은 보도블록을 깨거나 화염병을 드는 대신 아무 위력도, 위협도 되지 않는 촛불을 들었다. 구호는 단호해도 그 여린 저항의 태도는 아무리 그릇된 정권이라도 폭력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이 2017년 시민이 만들어낸 촛불혁명이었다.

2017년 병신년을 잊지 못하게 만든 주역 최순실의 첫 공판이 열린 날, 그 변호를 맡은 사람은 ‘대한민국은 태극기와 촛불로 분열’했다는 말을 했다. 이 말 역시도 번역이 필요하다. 아니 번역이 필요 없다. 수십 년간 반복되어온 못나고 못된 정권들의 위기전략들. 이제 속을 수도, 당할 수도 없는 프레임 공작.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좌우의 문제?…"상식의 문제"

그날에 <뉴스룸>의 손석희는 앵커브리핑을 통해 한 가수를 소개했다. 사진만으로는 광화문에 흔하디흔한 모습이었다. 아내와 남편이 촛불 하나에 얼굴을 모은 평범한 사진. 또 앵커가 소개한 그의 말도 평범하고 흔한 내용이었다.

‘진보보수, 좌우, 정치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선악의 문제다’

곧 연인원 천만을 넘길 거라는 주말의 촛불집회. 극단의 절망과 분노로 시작된 것이 어쩌다보니 축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축제가 가능케 했던 큰 조력이 있었다. 섭외가 아니라 자원한 여러 뮤지션들의 공로였다. 이승환, 전인권, 양희은, 한영애 등 가요계의 큰 획을 그은 대형가수들부터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볼빨간 사춘기까지.

당연한 것처럼 느꼈지만 돌아보면 새삼 그들의 각별한 용기를 잊고 있었던 미안함이 밀려든다. 수많은 연예인, 스포츠스타들은 대중의 사랑으로 부와 인기를 누리고 살지만 애써 광장을 외면했다. 그럼에도 유명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뮤지션들은 무대에 섰고, 광장의 시민들을 위로하고 또 격려했다. 그들의 공로가 결코 작지 않다.

윤종신 ‘그래도 크리스마스’ 뮤직비디오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물론 모두가 그 무대에 서야 하는 것은 아니고, 광장에 나오는 것이 또 다른 편가름이 되어서도 안 된다. 다만 함께해온 뮤지션들이 고마운 것이고 또한 자랑스러운 것일 뿐이다. 그리고 시국에 온 정신을 다 쏟느라 몰랐던, 커다란 선물까지 준비한 윤종신을 <뉴스룸>이 알려주었다.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에 소개된 월간 윤종신 12월호는 일단 수작이다. 그는 딱히 정치적 소신을 밝혀왔던 소위 소셜테이너가 아니었지만 일상을 담아내는 담백한 일련의 작업들처럼 2017년을 담담히 담아낸 노래와 뮤직비디오는 알찬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음악도 포기하지 않고, 2017년에서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꼼꼼히 다 담아냈다. 시대를 기록한 대중가요는 정말 얼마나 오랜 만의 일인가.

“지금 내 옆 거짓말 못하는 작은 꿈들로 사는 사람들. 그들과 건배해. 오늘은 그래도 크리스마스”

윤종신 ‘그래도 크리스마스’ 뮤직비디오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그 노래 제목은 ‘그래도 크리스마스’ 부제는 ‘상식의 크리스마스’였다. 참 좋은 가사다. 그런데 이 노래 뮤직 비디오 끝에는 손석희가 등장한다. 언젠가 그가 말했던 “뉴스와 절망을 함께 전한 것은 아닌가”하는 뉴스맨의 보기 드문 토로였다. 어쩌면 월간 윤종신의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그런 손석희에게 시민들의 대답을 대신 전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뉴스룸>이 있어서, 손석희가 있어서, 우리는 깊은 절망에서 희망을 건져냈고 스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우리가 찾은 광장이 그것을 말해준다고. 처음 손석희에게서 윤종신으로, 그리고 다시 윤종신에게서 손석희에게로 이어지는 뉴스와 노래의 화답. 마치 석가가 꽃을 들자 제자 가섭이 미소 지었다는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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