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가 보도한 태블릿PC가 또 문제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국정조사특위의 청문회장에서 이를 두고 오고 간 질문과 답이 여당 의원에 의해 이미 ‘사전 모의’됐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중앙일보는 19일 지면에 고영태 씨의 주장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 취재는 13일에 진행됐는데, 고영태 씨는 월간중앙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박헌영 K스포츠재단 과장이 청문회 자리에서 태블릿PC의 소유 문제에 대해 위증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블릿PC가 최순실 씨의 것이 아닌 고영태 씨 소유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고영태 씨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태블릿PC 충전기를 구해오라는 이야기도 등장할 거라고 추측했다. 15일 청문회에서 나온 질문과 답변은 이러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중앙일보는 또 이날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의 주장을 통해 정동춘 재단 이사장과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JTBC가 태블릿PC를 훔쳤다는 것으로 상황을 몰아가기 위한 모의를 했다고도 보도했다. 이완영 의원은 “요즘 누가 그런 짓을 하느냐”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이완영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모 의원이 고영태 씨를 12월 초와 12월 12일 두 차례 장시간 만났다고도 주장했다. 즉, 정동춘 이사장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이상할 게 없는 일이며 위증을 하라는 사전 모의도 한 바가 없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사실관계가 더 밝혀져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지적할 수밖에 없는 것은 태블릿PC의 소유 문제를 제기하는 보수세력 일각의 태도이다. 태블릿PC는 ‘국정농단’ 행위의 수단으로 쓰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태블릿PC가 누구의 것이든 최순실 씨가 실제 사용을 한 걸로 추정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박사모 등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세력 일각은 태블릿PC의 소유와 출처 문제를 둘러싼 의혹을 반복해서 제기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19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이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행위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조작’에 의한 것으로 치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조작’은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과 소유주인 홍석현 회장이 주도한 것이며 당연히 여기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거다. 언론을 장악한 불순세력은 없는 증거를 만들어내고 별 것 아닌 사건을 침소봉대해 대중을 속였으며,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간 대중은 매주 1백만명씩 촛불시위에 참여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 구도 안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피해자’이다.

민감한 사안이나 정치적 현상을 어떤 ‘조작’이나 ‘선동’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려 들면서 대다수 대중이 속아 넘어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의 근본은 일종의 냉소주의다. 이 관념 하에서 우리는 온갖 것들에 속고 갈취 당한다. 이러한 관념은 정치의 영역에서 보통 ‘정치혐오’로 표출되며,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일종의 반지성주의로 나타나기도 한다. 모든 의학지식을 거부하면서 종교나 검증되지 않은 민간치료에 의존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런 관념은 오히려 존재하는 문제를 외면하게 만든다. 보수세력 일각의 주장을 그대로 따른다면 JTBC가 다수의 대중을 속이고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든 것이 문제이다. 즉, 언제나 ‘불순한 의도’가 문제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러한 ‘불순한 의도’가 없는 경우, 즉 JTBC 보도 내용이나 방식 자체에 대한 저널리즘적 분석이나 비판은 하나마나한 일이 돼버리고 만다.

예를 들면, 모든 의학지식을 거부하는 어느 기인(奇人)의 존재를 가정해보자. 현대의학과 의사들의 행태, 의학과 관련된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이 기인이 이에 대한 비판을 감행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의학지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체제를 창조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현대의학의 문제를 비판을 통해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13일 오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특검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강남구 대치빌딩 앞에서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JTBC 태블릿PC' 입수 경위 즉각 수사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식의 관념이 횡행하는 것은 합리적 비판과 생산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또 이를 통한 문제의 본질적 인식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다. 이러한 관념적 바탕 위에서 정치는 작동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정치가 세상을 바로잡는 수단으로서 쓰이는 게 아니라 ‘내 편’과 ‘상대 편’이 권력을 놓고 벌이는 일종의 게임으로서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청문회에 출석해야 할 주요 증인들과 위증을 사전모의 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법적 책임을 넘어 정치를 망치는 문제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완영 의원이 이날 해명에 나서 굳이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고영태 씨를 만나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거론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신실하지 않은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자신의 잘못’을 묻는 질문에 ‘너의 잘못’을 거론하는 냉소주의적 태도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JTBC가 보도한 태블릿PC 문제는 그것이 기만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최순실 씨는 국정농단 의혹 등을 다루는 재판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해 자신에게 제기된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최순실 씨의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는 문제의 태블릿PC를 사건의 증거로 채택해 감정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결국 태블릿PC에 대한 보수세력 일각의 의혹 제기가 최순실 씨에게 법적인 이득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만일 보수세력 일각의 태블릿PC에 대한 의혹 제기가 이런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면 ‘남에게 속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남을 속이려는 행위’라는 규정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면 보수세력 일부는 또 ‘야당(또는 종북)도 똑같이 한다’고 답할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기만은 현대의 냉소주의를 지탱하는 전형적 문법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앞서 언급했듯 정치를 좀먹는다. 박근혜 정권과 그 지지자들은 법을 어기고 헌법을 유린한 것도 모자라 정치 그 자체를 망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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