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물은 무겁다. 시적 표현이다. 눈물이나 땀이나 조금 짠 편이니 무게가 조금 더 무겁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그것을 무겁다고 표현할 정도의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때면 고개를 숙인다. 마치 눈을 빠져나가는 눈물의 장력이 강해서 그런 것처럼, 그 눈물의 중력에 상체마저 숙이게 되는 것처럼.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피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고 말이다. 또 며칠 전 서문시장 화재현장을 잠깐 다녀가는 차 안에서도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본 기억도 있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눈물은 왜 무거워야 하는가"

이를 대한 솔직한 심정은 요즘 말로 ‘안물안궁’이다. 물어보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들은 것을 듣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으니 소감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소감에 앞서 이런 식의 기사로 도배하는 언론의 의도에 대해 먼저 불쾌감을 표하고 싶다.

이 기사에 대해 김창룡 인제대 교수는 “눈물이든 피눈물이든 언론에서는 더 이상 보도하지 않기를 바란다. 불신 받는 청와대의 참모의 전언으로 이런 보도를 하는 언론은 아직 정신 차리지 못 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는 “실체가 없는 뉴스”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눈물에 대한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의 보도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하려는 정치적 의도라는 점을 경계하며, 이를 보도한 언론들의 보이지 않는 동정 프레임을 용납지 않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눈물은 왜 무거워야 하는가"

그리고 같은 시간대 뉴스를 진행하는 SBS에서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에 대한 단독보도가 있었다. K스포츠와 미르재단 의혹이 불거지던 지난 10월 중순의 메모였고, 거기에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두 재단에 대한 모금에 청와대가 관여하지 않았고,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결정했다고 하라는 지시였다.

다시 앵커브리핑의 일갈 “그렇게 갈수록 선명해지는 그 혐의사실을 뒤로 하고 흘렸다는 눈물. 아니 피눈물”이 귀에 쏙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2년 전 결코 무겁지 않았던 눈물을 보지 않았는가”라며 이 눈물의 프레임에 대한 단호함을 볼 수 있었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눈물은 왜 무거워야 하는가"

앵커브리핑이 시로 말했으니 그에 대한 해석도 다시 시로 하고자 한다. 2013년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겠다고 절필 선언을 한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던 시이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신철규 시인의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와 묘하게 연결되는 뉘앙스의 이행. <너에게 묻는다>를 빌어 <눈물의 중력>을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너에게 묻는다. 눈물 함부로 보이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눈물은 무거워야 한다. 그러나 무겁지 않은 눈물을 애써 알리려는 홍보의 습관.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눈물은 중력을 느끼게 하는 무거움이 아닌 중독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에 뉴스를 담는 앵커브리핑. 덕분에 <뉴스룸> 시청자들은 앵커브리핑에 소개되는 시와 아포리즘을 찾아내 음미하게 된다. 뉴스와 문학이 협동심을 발휘하는 앵커브리핑이기에 사람들은 그 내용을 더 강하게, 더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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