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결 이전 ‘마지막 수’가 될 걸로 여겨졌던 대국민담화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탄핵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친박계 내에서도 탄핵에 찬성 표결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탄핵에 부정적인 입장이 확고한 친박계 인사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4차 대국민담화에 비박계 일부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봤으나, 이제 이런 기대도 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6일 새누리당 내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가결 처리 준비를 사실상 완료했다고 밝혔다. “표결 이후 논란에 대비해 우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자료도 준비하려고 논의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소속 의원의 표결 내용을 공개할 수도 있다는 언급으로 읽힌다. 만에 하나 탄핵이 부결될 경우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고려로 볼 수 있다.

이들은 또 “여러 논의 끝에 우리는 이제 대통령의 4월 조기 퇴임은 국민으로부터 거부당한 카드라고 봤다”고 했는데, 사실상 탄핵 외의 다른 방법을 모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비박계가 이렇게 주장하면 ‘4월 퇴진 6월 조기대선’이라는 새누리당의 당론은 사실상 무너지게 된다. 이날 예정된 새누리당 의원총회는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당론이 유지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애초 박근혜 대통령의 4차 대국민담화는 새누리당의 당원으로서 당론을 받아들이겠다는 취지가 될 걸로 예상됐다. 즉, 비박계의 입장표명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차단한 것이다.

결국 탄핵은 기정사실화됐고 남은 건 이후를 대비하는 것뿐이다. 이 대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수’를 쓰는 게 아니라 법리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3차 대국민담화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에게 제기된 이런 저런 의혹들에 대해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거라는 취지의 언급을 한 바 있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성격의 입장을 밝힌다면 그 내용은 자신에게 어떤 사익 추구의 의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6일 청와대로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본격적인 특검 조사는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에 이뤄지게 된다. 이 시기는 직무가 정지된 상태이므로 박근혜 대통령은 온전히 자신의 혐의에 대한 법리적 방어에만 몰두할 수 있다. 본래도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대통령이 오로지 자신에 대한 법적 방어를 위해서만 남은 대통령의 권한을 활용하는 눈꼴사나운 장면이 벌어지는 셈이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책임성 있게 다뤄줄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는 1월 말 종료되는데, 그가 법률가로서의 양심에 따른다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은 1월 안에 끝내야 한다. 그의 임기가 종료된 이후에는 헌법재판소장을 다시 임명하는 등의 절차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반드시 헌법재판소장이 있어야만 탄핵심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혼란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겨레 등 언론은 사망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긴밀히 소통하며 헌재 결정의 내용에 간여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만일 이런 주장이 사실이고 이번 일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압력이 작용한다면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을 제때 할 수 없을 것이다. 최소한 대통령에 대한 특검의 기소 내용이 확정될 때까지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최악의 경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은 무한정 늘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이 조성된다면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도 ‘수’를 쓸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예를 들자면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상태이더라도 특검의 기소 내용을 파악하고 법적 대응의 준비를 완벽히 한 후에 사임 의사를 밝히는 등의 방식이다. 탄핵심판의 도중에 대통령의 사임이 가능한지 아닌지에 대해선 법적 논란이 있는 상태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이 사임을 할 테니 국회가 탄핵안을 철회해달라고 요구한다면 논란은 더 확대된다. 이게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 가능하다면 탄핵안 철회 결정을 국회가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각 정치세력 간의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의 신경전은 탄핵 가결 이후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상상을 가능케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6일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문 전 대표는 대통령을 헌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탄핵하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신은 헌법을 일탈한 방식으로 ‘탄핵 후 대통령 즉각 사임’을 주장하며 조기 대선을 치르겠다는 욕심을 드러내고 있다”, “본인의 권력 욕심만 생각하는 지극한 아집이자 독선적인 발상이며 반 헌법적인 생각”이라는 비판을 퍼부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5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촛불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무성 전 대표의 이런 입장은 전날 문재인 전 대표가 국회 앞 촛불집회에서 한 발언에 대한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탄핵이 의결되면 딴말 말고 즉각 사임해야 한다”면서 “헌법학자 간 의견이 나뉘지만, 저는 탄핵 의결 이후에도 사임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헌재가 심리에 들어가기 전 대통령이 사임 의사를 밝히면 탄핵 절차를 종결하고 60일 내 조기대선 일정에 돌입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이런 발언은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 결과이기도 할 것이지만, 동시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늘어질 가능성을 의식한 걸로 보인다. 김무성 전 대표가 이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선 것 역시 절차적 무리수를 지적하겠다는 취지가 있겠으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에도 보수세력의 재편에 유리한 방식으로 상황을 제어할 수단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탄핵’으로 모든 상황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건 이후 대선을 앞둔 정계개편 구상과도 연동돼 있다. 6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MBC라디오와의 전화 연결에서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새누리당 내에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즉, 새누리당이 분당 또는 사실상 해체 수순으로 간 이후에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이른바 제3지대 정계개편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던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일각에서 계속 국민의당과 새누리당의 연대를 말한다”면서 “새누리당과의 연대는 없다. 부패세력과의 연대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 드린다”고 주장했다. 최근까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일각에서 제기한 ‘음모론’에 가까운 문제제기를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안철수 전 대표와 국민의당이 처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안철수 전 대표가 이 국면에서 대권주자로서의 지지율을 충분히 끌어 올리지 못하면 정계개편 외의 다른 수단이 없는 ‘절벽’을 만날 수가 있다. 다수의 여론조사는 이미 국민의당이 의석 다수를 점하고 있는 호남에서 안철수 전 대표에 대한 지지율이 내려 앉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런 각자의 곤란한 정치적 처지가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의 정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논란 속에서 보수세력은 무너진 전열을 정비하고 그들만의 ‘환골탈태’를 통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방편을 마련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박근혜 정권을 만든 책임이 그들에게 있고, 그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한다는 거다.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상황을 박근혜 대통령을 직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불장난’으로 이용하는 세력은 반드시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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