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이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열렸다. 첫눈이 내린 날이었다. 눈은 진눈깨비로 바뀌었고, 점점 눈은 비와 섞여 내렸다. 사람들은 걱정했다. 최대 인원을 목표로 삼았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 거 아니냐는 불안이었다. 그런데 그 불안은 또 다른 희망이었다.

오마이티비와 인터뷰를 한 여성들은 날씨가 궂어 다른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까봐 자신들이 나왔다고 했다. 이미 서울 한복판에는 충분히 많은 인파가 움직였지만 주최 측이 기대한 그 수를 채우지 못하면 혹시라도 촛불의 민의가 사그라지는 것이라 오판하고 이용할까봐 걱정인 것이다.

KBS2 <다큐멘터리 3일> ‘촛불, 대한민국을 밝히다 - 광화문 광장 72시간’편

가뜩이나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망언에 더 분노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날 내린 하얀눈을 ‘하야눈’이라 읽으며 사람들은 더 많이 광장으로 나섰다. 5차에도 불구하고 줄어들지 않고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것도 신기한데, 주최 측이 몇 명이라고 하면 어떻게들 알고 그 수를 채우기 위해 나온 사람은 또 나오고 나오지 않았던 사람까지 나오는지 신기한 현상이다.

그리고 27일, 다큐3일이 그 현장을 담아냈다. 먼저 반가웠다. 그리고 놀라웠다. 놀라운 것은 일요일 아침까지 촬영한 것을 모두 편집해서 그날 밤에 방영했다는 점이다. 10년이 넘은 다큐3일의 관록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다큐3일은 칭찬만 할 수는 없었다.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역대 최대인원에 궂은 날씨 등이 취재거리로는 가장 적합한 날짜를 잡은 것이기는 하지만, 다큐3일이라면 5주 만에 광장을 찾은 것은 지각이었다. 다큐3일은 현재의 기록이다. 방송이 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담아놓을 이유는 충분했다.

KBS2 <다큐멘터리 3일> ‘촛불, 대한민국을 밝히다 - 광화문 광장 72시간’편

물론 다큐3일이 아니더라도 어느 때보다 올해 촛불집회의 영상자료는 풍부하다. 기존 방송사들은 물론이고 비방송 매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광장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1인 미디어까지 더해져서 찾아보려면 얼마든지 현장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큐3일이 이 부분에 더 특화된 방송이기 때문에 뉴스가 전하지 못하는 부분을 담아낼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믿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큐3일의 이번 방송은 완성도를 떠나 너무 늦게 움직인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큐3일의 장점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데 있다. 다큐3일은 26일에 있었던 촛불집회를 취재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광화문 광장의 72시간을 담았다. 이것은 무척 중요한 기록이다. 다큐3일의 특기인 밀착본능으로 담아낸 광화문의 3일은 다른 매체의 영상과 같아 보이면서도 다른 무엇이 있었다.

KBS2 <다큐멘터리 3일> ‘촛불, 대한민국을 밝히다 - 광화문 광장 72시간’편

그러니까 같은 말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의미와 감동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의 광화문은 일차적으로는 정치적 표출이다. 그렇지만 특히 올해의 광장은 다른 것들이 아주 많다. 그런 매우 특별한 변화를 지금 당장 다 해석해내기란 불가능하다. 조금 쉴 수 있을 때를 위해서 기록은 당연히 소중하다. 그래서 다큐3일이 단 한 번의 방송으로 끝내는 것도 아쉽다.

광장에 나온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광장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한다. 또 알려야 할 의무도 있을 것이다. 또한 26일 광장의 수많은 일들 중에서 세월호 아이들을 등에 태운 파란고래가 시위대 머리 위로 떠다니던 그 가슴 먹먹하고도 감동적인 장면을 담지 못한 것도 또한 아쉽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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