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주말 서울광장에서 다시 열리는 촛불집회에 32명의 뮤지컬 배우들이 모여 <레미제라블>의 노래들을 한다고 한다. 그동안 광화문 광장에서는 줄곧 노래와 춤이 이어졌다. 그래서 저게 무슨 시위인가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순간에도 음악을 빼놓지 않는다. 전쟁과 혁명에도 음악은 함께였다. 또한 죽음에도 마찬가지다. 레퀴엠이나 한국의 씻김굿 음악은 종교를 떠나 영혼의 정화를 선사한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조차 아름답게 정화하는 음악의 힘. 호모 루덴스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같이 뒤숭숭한 때에 사실 문화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다. 아니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워낙 의식이 곤두선 상태이니 그러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금요일 밤에만 음악예능이 4개나 된다. 지상파의 <듀엣가요제>와 <노래싸움>이 있고 케이블과 종편으로 넘어오면 <판스틸러>와 <팬텀싱어>가 있다. 그중 뭐든 반드시 보게 되는 것이 습관인지 유희적 본능인지 모를 일이다.

JTBC <팬텀싱어>

어쨌든 지상파는 가요 중심이고 케이블과 종편은 거기서 한발 비켜나 국악과 뮤지컬, 클래식 중심이라는 것이 다르다. 하나같이 경쟁 구도 속에서 노래를 하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서바이벌이든 오디션이든 중요한 것은 시청자가 그 승부를 의식하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느냐다.

그런 면에서는 이 네 노래예능의 승자로 JTBC의 <팬텀싱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예선을 마친 <팬텀싱어>는 이제 본선에 접어들었다. 오디션이라면 빠질 수 없는 일대일 대결로 본선 첫 관문을 열었다. 25일 방송에서는 총 4팀이 선보였다. 바리톤 대 바리톤, 비전공 테너와 중학생 카운터 테너, 록커 대 정통 테너, 뮤지컬 배우 대 뮤지컬 배우.

일단 조합부터 좀 적극적이었다. 비록 노래들은 가요 오디션에 비해 점잖지만 대결은 치열하게 가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중에서 두 팀의 대결이 눈부셨다. 성악을 배운 적이 없는 비전공 테너 이벼리와 보기 드문 카운터테너 음역을 소화해내는 중학생 이준환. 그리고 록커 곽동현과 테너 이동신.

이들의 선곡도 특별했다. 이벼리와 이준환은 서로 너무 다른 음악세계로 인해 선곡부터 난항을 겪었다. 요즘 중학생인가 싶을 정도로 이준환이 가요를 너무 모르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 이준환이 의외의 제안을 내놓았다. 동요가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이준환이 제안한 노래는 창작동요제에서 대상을 한 <어느 봄날>이었다.

동요인 만큼 가사하며 멜로디 전개가 깨끗하고 아름다웠던 것은 물론이고 힘이 넘치는 테너와 그 위에 구름처럼 맴도는 카운터테너의 음역이 더해져서 환상의 하모니를 구성했다. 그들의 노래는 사람을 참 맥없게 만들었다. 승부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은 노래였다. 결과적으로는 이벼리가 이겼다.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런 것과 무관하게 이준환이 부르는 이 노래의 완곡을 듣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JTBC <팬텀싱어>

그리고 아마도 이날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은 그 다음에 등장한 록커와 테너의 대결이었을 것이다. 록커 곽동현과 테너 이동신이 선택한 노래는 이탈리아 가수 루치오 달라와 파바로티가 불러 유명한 노래다. 윤상은 감히 그 원곡보다 낫다는 평을 했다. 파바로티의 명성을 생각하면 당장 화부터 나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반박의 의지를 약하게 할 정도로 곽동현과 이동신의 카루소는 원곡과는 다른 힘을 보여준 해석이었다.

그들의 카루소를 윤상이 더 낫다고 평가한 이유의 대부분은 테너보다는 록커 곽동현 때문이었을 것이다. 루치오 달라와 달리 날카롭고 힘 있게 뽑아낸 록 발성이 주는 색다름과 강렬함은 분명 전율을 느끼게 할 만 했다. 이 조에서도 승자는 곽동현이었지만 역시나 그들의 노래를 듣는 동안에는 승부 따위 잊어버리게 했다.

<팬텀싱어>가 다른 오디션과 차별되는 점은 단지 음악만이 아니었다. 본선 첫 경연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이라면 누가 최후의 4인이 되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보일 음악의 수준, 완성도, 만족감 등이었다. 사람이 아닌 음악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오디션이라고 하고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