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누가 어린아이의 불행에 담담할 수가 있겠는가. 지난주부터 시작된 KBS 수목드라마 <오 마이 금비>는 요즘 주중 미니시리즈 중에서 가장 심심한 드라마일 것이다. 세상의 온갖 격정적인 감정과 설정이 총동원되는 주중드라마 전쟁에서 전작인 <공항 가는 길>의 바통을 이어받은 <오 마이 금비>는 어차피 전개와 결말이 보이는 식상한 플롯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시국도 어순실해서 요즘처럼 드라마나 예능이 눈이 들어오지 않을 때도 없는데도 금비에게는 관심을 끊을 수가 없다. 부모가 있지만, 부모로부터 아무런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자라 초등학교 3학년이 된 금비. 갑자기 알게 된, 그래서 아빠라고는 차마 하지 못하고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더 편한 아빠. 그 아빠와 저녁식사를 하며 학교에서 배운 성교육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참 천연덕스러워서 가슴이 짠해졌다.
아빠 이름은 모휘철. 딸의 이름은 유금비. 아빠와 딸의 성이 다른 부녀관계. 부모의 따뜻함 속에 자라지 못한 금비는 분명 나이에 비해 웃자라 있다. 그래서 봐도 몰라야 할 것도 쉽게 알아차린다. 아저씨라고는 부르지만 아빠가 자신을 키우지 못할 것을, 그래서 보육원에 가야 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보통의 아이라면 떼라도 쓸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 금비를 보는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그런 환경의 아이에게 꼭 따라다니는 또 하나의 불행. 업신여기는 학교 친구. 그 친구와의 다툼으로 금비가 혈연관계가 없는 강희의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강제로 보육원으로 가야 하는 순간까지도 금비는 오히려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뒤늦게 강희의 음성메시지를 듣고 아빠 모휘철이 달려왔지만 차는 이미 떠났다. 차가 한참을 달리고서야 소리 죽여 우는 금비. 열 살, 그 정도면 슬픔을 그렇게 숨기는 법까지 알지 못해야 한다. 그러나 울어도 달래주는 엄마나 아빠가 없이 자란 금비는 그렇게 소리 없이 울며 컸다 보다.
가까스로 차를 따라잡은 아빠를 보고는, 그 극적인 상황에서는 웃자란 금비라도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울면서 차에서 내려 “어디 갔었어. 어디 갔다 이제 오냐고”하면서 아빠를 때린다. 비로소 좀 아이 같았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보는 가슴은 더 찢어진다.
그런데 슬퍼할 일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이 작고 예쁜 금비를 기다리는 불행은 아직 숨어 있다. 먼저 금비가 앓게 된다는 어린이치매. 아무리 행복한 기억이 없어 차라라 다 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잊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 열 살의 인생.
게다가 아빠도 온전치 않다. 삼류 사기꾼이라서가 아니다. 병원에서 제대로 검사를 받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불행한 복선을 본 것 같다. 간과 비장 쪽에 조직검사를 해보자는 의사의 권고를 뿌리친 모휘철이었다. 딸이 태어난 것도 모르고 십 년을 산 아빠지만 어쨌든 아빠인데 금비가 감당해야 할 불행은 산 넘어 산이다.
작가가 잔인하다고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면서도 점점 금비의 불행에 빠져드는 이 정체 모를 감정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