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편한 날이 있었을까 싶지만 유난히 2016년은 혹독하다. 지옥의 폭염이 찾아온 여름에는 에어컨을 두고도 바라만 보면서 더위인지 분노인지 분간 안 되는 열기에 시달려야 했다. 사람의 안과 밖이 이토록 뜨거워져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찬바람 불면 살만 해지겠거니 기대했지만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현재는 아이들의 미래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른들은 제 것인 양 그 세상을 잔혹하게 유린해버렸다. 그래서 더 염치없지만 이럴 때 어쩌면 유일하게 위로를 삼을 대상이라면 천진무구한 아이들이 아닐까 싶다. 그저 바라만 봐도 영혼이 맑아지게 하는 아이들의 위안. 정말이지 남의 아이를 빌려서라도 그 위안을 얻고 싶은 때이다. 그런 것을 보면 어른이 아니라 아이가 어른을 기르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KBS 2TV 새 수목드라마 <오 마이 금비>

때마침 참 적절한 드라마 한 편이 시작됐다. KBS 수목드라마 <오 마이 금비>가 그렇다. 부모 없이 자라야 했던 10살의 금비(허정은). 환경에 비해 다행스럽게도 금비는 밝게 자랐다. 다만 좀 일찍 어른이 된 느낌이 든다. 부모의 애지중지로 크지 못한 아이라면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그런 금비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생겼다. 분명 다행이어야 하고, 기쁜 일이어야 하는데 딱히 그럴 사정이 아니었다. 아빠와의 생전 첫 대면을 재판정에서 해야 했던 금비. 아무리 어려도 아빠가 어떤 사람이라는 정도는 눈치로 알 수 있는 상황. 그 아빠 모휘철(오지호)은 삼류 사기꾼이다.

재판정에 등장한 생면부지의 딸 덕분에 실형을 면하게 됐다. 문제는 금비를 절대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극적(?)으로 만난 부녀지만 서로에게 애틋한 정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딸은 사기꾼 아빠가 미덥지 않고, 아빠는 딸일 리가 없는 어린 아이를 떠맡게 된 것이 마뜩찮다.

이쯤 되면 이 드라마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강 윤곽이 드러난 셈이다. 분명 티격태격하면서 정이 들어가고, 그러다가 생각지도 않게 친아빠고, 친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 차례 뜨겁게 눈물 쏟게 할 것이다. 일본이라면 흔한 내용이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착한 드라마 한 편이 나온 것이다.

KBS 2TV 새 수목드라마 <오 마이 금비>

그렇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다. 금비와 휘철에게 두 여자가 있다. 하나는 금비를 낳아준, 휘철에게는 애정 없이 거쳐 간 수많은 여자 중 하나인 유주영(오윤아)이다. 다른 하나의 여자는 금비를 아껴주고, 휘철이 첫눈에 반한 여자 고강희(박진희)이다. 그 두 명 사이에서 금비와 휘철이 겪게 될 감정의 변화들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금비에게는 어린 아이에게는 상상치도 못할 병이 있었다. 아직 드라마 상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금비는 치매와 비슷한 증상이라는 ‘니만피크 병’과도 싸워나가야 한다. 부모 없이 자란 것만으로 금비는 참 슬픈 아이인데, 소위 노년의 증상과 맞서야 하는 운명이라니 너무도 가혹하다.

어쩌면 금비에게는 모든 아이들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얻게 되는 당연한 과정들이 너무도 힘겹고, 위태로운 것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전호성)가 이처럼 금비에게 가혹한 설정들을 준 데에는 분명 깊은 철학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많이 울게 할 것이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다고, 참 적절한 때에 이 드라마를 만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