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연예계에는 작은 변화가 꿈틀거렸다. 풍자를 포기 혹은 금지당했던 SNL과 개그콘서트에서 풍자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SNL은 이번 주 들어 최순실 풍자를 보이지 않았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서 이번 정권 들어 워낙 호되게 시달린 CJ라서 그런 건지 작가들의 준비가 아직 부족한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SNL은 아직 초심으로 돌아갈 모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반면 개그콘서트는 제대로 준비했다. 과거 거의 강제로 문을 닫다시피 한 민상토론이 돌아왔다. 시작부터 날카로웠다. 코너 이름을 리얼사운드라고 해놓고는 유민상과 김대성 뒤에 선 패널을 뜯자 ‘검찰청에서 곰탕 먹는 소리’라는 문장이 나오자 두 사람은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뒤에 있던 스크린이 내려지면서 비로소 민상토론 세트가 드러났다.

야당의 특검도 준비되고 있지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검찰이 하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수상한 움직임에 대해 언론과 여론의 냉소가 커지고 있는 아주 극명한 현상이 아마도 ‘곰탕과 팔짱’일 것이다.

KBS 2TV <개그콘서트-민상토론2>

최순실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곰탕을 다 비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피의자의 식사 메뉴가 무슨 뉴스거리가 되나 싶겠지만 실제로 많은 기사가 만들어졌다. 심지어 검찰 주변의 곰탕집들을 돌며 배달한 곳이 있는지에 대한 조사까지 이루어졌다. 인터넷에 퍼진 곰탕 암호설에 대한 검증이었다. 그리 중요한 사실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검찰을 의심하고 있다는 여론의 편린 정도일 것이다.

또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사실은 빈 박스였다는 것이 네티즌들의 사진 탐독으로 밝혀진 바 있어 검찰 수사에 대한 진정성은 매우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런데 검찰에 출두했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포토라인에서 보였던 오만한 태도와 조사를 받으며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웃는 모습이 또 국민감정을 건드렸다.

이런 내용을 함축한 것이 돌아온 민상토론2의 오프닝이었다. 사회자 송준근이 조사를 많이 했다면서 파란 박스를 들어 거꾸로 흔들자 종이 한 장이 달랑 나왔다. 의도한 기술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하필 그 종이 한 장도 참 초라하게 팔락거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어서는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라는 팻말을 들어올리기까지 했다. 대단히도 모진 복귀의 신고식이었다.

KBS 2TV <개그콘서트-민상토론2>

이쯤 되면 개그콘서트가 KBS 뉴스도 하지 못한 팩트 체크에 나섰다고 해야 할 판이다. 또 코미디의 풍자 부활을 선언해도 될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주 SNL과 개콘의 풍자에 대한 뒷말이 있었다. 표피를 건드렸으니 본질로 향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듯싶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모름지기 제대론 된 풍자라면 본질을 건드리거나 적어도 그러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 상황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오래 금지되었던 풍자를 이제 막 하려는 개그콘서트에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하룻밤만 자도 팔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켜야 활동을 할 수 있다. 10년에 가까운 세월 묶여 있던 풍자를 되살리기에는 그만큼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11월 12일 광장이 다시 열리고,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당위와 희망을 함께 보았다. 그리고 그 광장 여기저기에 펼쳐진 수많은 풍자와 패러디를 보며 함께 웃을 수 있었다. 풍자가 금지된 시대에 우리는 얼마나 답답했던가. 그것을 생각하면 당장은 더 모질어도, 설혹 본질이 아니더라도 우리를 분노케 한 모든 것들을 풍자로 치유할 수만 있다면 뭐든 어떻겠는가. 이제 비로소 개그가 온전한 반쪽을 찾아가는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