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 검찰에서 먹었다는 곰탕의 의미가 무엇인가하고 앵커가 취재기자에게 묻는다. 기자 김준현은 이 곤란할 질문에 “탁재훈 씨가 알고 있는 고대로입니다”라고 공을 넘긴다. 그러자 앵커는 “해장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아주 대찬 풍자였고, 시원한 해장국처럼 속이 확 풀리는 멘트였다.

요즘 뉴스와 국민의 눈과 귀는 최순실의 모든 것에 집중되어 있다. 뭘 해도 싫고, 뭘 해도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조사 중에 흔히 먹을 수 있는 곰탕까지도 관심을 갖기에 이르렀는데, 검찰청 주변에 어디도 곰탕을 배달한 곳이 없다면서 그것이 모종의 암호가 아니냐는 설까지 등장했다.

tvN 예능프로그램 'SNL 코리아'

탁재훈이 말한 해장은 그보다 더한 독설이 아닐 수 없다. 검찰 수사 중에 해장을 한다는 말의 의미는 생각보다 깊다. 이것이 탁재훈의 애드리브였는지 아니면 대본이었는지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이 풍자의 의미는 최순실과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SNL에 정치 풍자가 등장했다. 도대체 얼마만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마지막 기억이 여의도 텔레토비였으니 4년 정도가 될 것 같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SNL이 자기 정체성의 절반을 차지하는 풍자를 하루아침에 포기한 배경이 무엇이었는지는 다 알고 있었다.

보도가 본질이고 의무인 기자들마저 취재가 아닌 받아쓰기를 하는 상황에 개그맨이, 연예인이 정치적 압력에 굴복했다고 욕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SNL의 더욱 19금 표현에 더 몰두하는 것 같았고, 그렇게 한동안 섹시코드만 남은 SNL은 지루하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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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1월 5일, 광화문에 20만의 시민들이 모인 시국촛불집회와 함께 SNL의 풍자가 살아 돌아왔다. 시작부터 호스트인 솔비는 다소 야한 포즈를 취하면서 그 의미를 묻는 신동엽에게 “우주의 기운을 모으는 것”이라며 SNL이 되찾은 풍자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렇게 시작된 풍자는 이후 계속되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패러디하는 콩트에서는 유세윤이 말인형을 쓰고 나왔고, 다음 콩트에서는 김민교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보자마자 알 수 있는 여성으로 나왔다. 뭘 특별히 말하지 않더라도 콩트에 이런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 자체가 죽었던 풍자의 부활을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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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까지 SNL은 최순실 이슈를 놓치지 않고 빼곡히 풍자를 채워 넣었다. 또한 약속이나 한 것처럼 KBS <개그콘서트>에서도 몇 차례 최순실 분장을 한 개그맨들이 등장했다. 이제 오래 금지되어 있던 개그의 본질, 풍자가 돌아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금지되었던 풍자가 돌아왔다는 것은 곧 사회의 막혔던 소통의 줄기가 다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치유가 시작됨도 말해준다. 무려 4년간. 어쩌면 그보다 더 긴 9년간 웃지 못했던 얼굴들이 비로소 웃을 수 있게 됐다. 정치인도 아니고, 관료도 아닌 일반 시민들이 그 긴 고통의 세월을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 이런 웃음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마침내 다시 열린 풍자의 시대가 반갑다. 적어도 웃음만은 빼앗지 말았어야 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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