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이 하는 국악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기대도 컸지만 기존 국악계에서 시도된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는 양상이다. 그만큼 국악의 대중화라는 것이 어렵다는 반증인 동시에 지금까지 국악계가 가져온 고민들이 틀리지는 않았다는 잠정적인 인정을 하게 된다.

윤상이라면, 아예 국악을 모른 채 국악을 대하는 대중음악가의 감각이라면 그래도 새롭고 또 기발한 방법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했던 기대는 무너졌다. 아마도 한국인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국악(전통)에 대한 지나친 경외심이 빚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Mnet 국악 예능 <판 스틸러- 국악의 역습>

그렇지만 중간 중간 판소리나 다른 국악 연주를 흑백으로 처리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면서 또 집중시키는 솜씨는 칭찬해줄 만했다. 그리고 이번 주 <판스틸러>를 보면서 가장 놀랍고, 매혹적인 장면은 따로 있었다. 심지어 정식 공연의 형식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이하늬가 살짝 부른 남도민요 ‘흥타령’이었다. 이 흥타령은 판소리 좀 듣는다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명곡이다. 더러는 영화 <취화선>에서 들은 것을 기억할 것이다. 또 다른 남도민요인 ‘육자배기’와 ‘흥타령’은 국악의 특징이자 우리 민족의 정서와도 깊이 끈이 닿은 한을 담은 ‘계면’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Mnet 국악 예능 <판 스틸러- 국악의 역습>

특히 흥타령은 가사가 하도 심오해서 민요라고 쉽게 접근했다가는 큰코다치게 된다. 방송에도 나왔듯이 ‘꿈이로다’ 대목인데, 그 가사 일부를 소개한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판소리를 모르고, 남도민요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 가사를 그저 문학적으로 접근을 해도 얼마나 지독한 허무를 담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떻게 보면 불교사상을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가사만으로도 그렇지만 여기에 제대로 된 소리를 얹어 들으면 헤어날 수 없는 짙은 감상에 젖게 된다.

게다가 제목은 ‘흥타령’이면서 노래는 영 딴판이니 멋도 모르고 들었다가는 속았다고 생각하다가 이내 이 노래가 주는 어떤 마법 같은 매력에 빠져버리게 되기도 한다. 대중가요로 굳이 찾아본다면 임재범의 노래를 들을 때 느끼는 감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것이다. 또 그 임재범의 노래를 최근 <복면가왕>에서 팝콘소녀가 불렀던 ‘그대는 어디에’를 떠올려도 비슷할 것 같다.

Mnet 국악 예능 <판 스틸러- 국악의 역습>

그런 노래가 미스코리아의 입에서 흘러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판스틸러> 4회를 보던 중에 가볍게 부른 것이지만 이하늬가 이 노래를 읊조리는 모습에 피우던 담배를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다. 물론 이하늬가 가야금병창을 했었기는 하지만 그녀의 국악 이력은 여전히 낯설고, <판스틸러>에서도 개량가야금을 주로 연주하는 모습이어서 이 ‘흥타령’을 부르는 모습은 진정 의외였다.

대화 중에 잠깐 소개하려고 부른 것이라 금세 그치고 말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에 이하늬가 가야금병창이든, 아니면 노래만 하든 이 ‘흥타령’을 제대로 부른 모습을 꼭 보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이 <판스틸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하늬는 미스코리아 출신의 연예인이다. 미스코리아가 가야금(개량이 아닌 산조가야금)을 타면서 남도민요의 정수 흥타령을 부르는 장면은 전무후무하다. 사람들은 이하늬가 국악을 전공했다는 사실보다도 미스코리아 이하늬가 국악을 한다는 사실에 더 무게를 둘 것이다. 그 정도만 해도 대중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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