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산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은 뜻을 이루고자 하는 우직함과 끈기를 의미하지만 거기에는 분명 느림의 미학에 대한 격려가 담겨 있다. 요즘 득량도에서 요리 삼매경에 빠진 에릭에게 이 우공이산을 응용해 ‘에공이산’이라는 말을 붙여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등장과 함께 세인을 깜짝 놀라게 한 에릭의 요리솜씨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놀라움과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간단해 보여도 정말 어려운 국을 쉽게 끓여내는 것을 보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요리솜씨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지만 이제는 죽에서, 간짜장까지 못하는 것이 없다. 심지어 생선초밥까지 해냈으니 이쯤 되면 에릭 만세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3>

그런 에릭에게도 단 하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느리다는 것이다. 한국인이면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보다 빠름에 학습된 존재다. 물론 가스렌지, 전자렌지 등 요리에 속도를 보장해줄 현대문물이 없는 득량도에서는 빠른 요리는 아무래도 무리다. 뭘 하나 하려면 장작을 패야 하고, 그 장작을 놓고 불을 피우기 위해서 한참을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득량도 사정이기에 이서진도, 막내 윤균상도 이미 마음의 준비는 된 상태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해주는 것마다 족족 입맛을 확 잡아버리니 그 맛에 중독되어 처음 얼마 동안은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맛과 놀람에도 한계치가 있어 점점 에릭의 느린 요리 속도에 말 못할 속앓이가 생겨나고 있다.

갈수록 에릭의 요리시간이 길어진 데 따른 불만이다. 예컨대 아침을 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지만 막상 밥상을 받는 시간은 오전을 넘긴다는 것이다. 우리들도 일상 속에 아점이 드물지 않지만 그것은 밥을 먹는 사람이 늦은 것이지 하는 사람이 늦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득량도의 세끼하우스의 주방장 에릭은 정말 맛있는 요리를 내놓지만 너무 늦다는 것이 문제였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3>

시작부터 명상 아닌 구상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하는 신중하거나 혹은 정리가 덜 된 에릭에게 아무래도 요리를 빨리 해내기까지 바라는 것은 분명 야박한 일이다. 그런 속을 모를 리 없지만 넉넉히 11시 반쯤에 먹을 거라 예상했던 아침밥을 12시 50분을 지나서야 먹게 되니 아닌 게 아니라 좀 심각한 문제이긴 하다.

그런 느린 에릭의 요리 스타일은 오히려 슬로우 푸드를 추구하는 삼시세끼의 콘셉트에 잘 맞기는 하는데, 조금씩 삼시세끼 내에 고민거리가 생기는 분위기다. 진짜 삼시세끼 밥하는 것만 찍게 생긴 제작진도 고민이고, 밥을 시작해서는 이쯤이면 먹겠다는 예상과 기대가 번번이 어긋나는 에릭의 달팽이식당 손님들인 이서진과 윤균상에게도 밥상을 기다리는 반복된 일상이 다소 힘든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3>

그렇다고 다 큰 어른들이 밥이 늦게 된다고 투정을 부릴 수도 없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에릭의 요리가 맛으로는 정말 만족스럽기 때문에라도 요리하는 손을 바꿀 수도 없다. 이런 걸 두고 딜레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회를 뜨는 요령이 없어 촬영 외에 혼자서 시장까지 가 상인에게 기술까지 배워오는 정성을 아끼지 않으니 뭐라 할 말이 없다.

막내 윤균상이야 이런저런 불만을 드러낼 형편은 아니지만 프로 투덜러 이서진은 기어이 에릭에게 군소리를 참을 수 없었나 보다. 오래 기다린 호박죽을 한 술 뜨고는 “정혁이가 음식으로 실망시키지 않잖아, 시간으로 실망시켜서 그렇지”라고 잔소리를 슬그머니 비치고 말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득량도의 매일 풍경이 되어가는 에릭의 달팽이식당. 조금은 단조로울 수 있지만 그렇게 사소하게 투탁거리는 모습마저도 삼시세끼만이 줄 수 있는 민낯의 일상이 주는 즐거움일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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