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영된 <무한도전> 및 <런닝맨>의 자막이 화제였다. 제작진이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넣는 자막이나 출연자의 발언은 분명 요즘 대한민국 뉴스를 집어삼킨 최순실 게이트를 향한 풍자의 의도가 분명하다. 짧은 이런 풍자는 예능 시청자에게 의외의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최순실 게이트가 얼마나 막중하면 예능마저 이럴까 싶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뉴스가 예능만 못하다는 말이 회자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그럴까? 너무 쉽게 단정 짓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저어하면서도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는 없었다. 오히려 예능이 전만 못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예전에는 흔히 “예능은 예능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예능 속 구호를 들을 수 있었다.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이 구호가 외쳐질 때의 정치권은 정치인, 언론을 향한 트집 잡기도 부족했던지 코미디나 예능의 풍자에 대해서도 서슬 퍼런 경고를 날리고 있었다. 방통심의위가 정말 바빴던 시기도 꽤나 오래 지속됐다.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예인 블랙리스트의 위력도 여전하다.

그 결과 요즘의 코미디에서는 풍자와 해학이 아예 자취를 감췄다. 그와 동시에 국내 예능 시청률 상위를 달리던 <개그콘서트>의 열기는 식어버렸고, 이제는 해야 되냐 마냐를 따질 초라한 모습이 돼버리고 말았다. 또한 풍자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SNL>도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풍자는 사라지고 그저 섹시 코드만 남았을 뿐이다.

기자와 탐사보도 피디들이 스스로 자기 검열에 빠질 정도의 상황이었으니 코미디의 위축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뉴스가 못하면 코미디라도 해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조차 못하게 한 것이 핵심이라 할 것이다.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민간인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쳤다는 명제에 청와대의 비서실장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진짜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바로 대중의 풍자와 해학을 금지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판소리가 그렇다. 수많은 판소리들 중에서 살아남은 다섯 마당의 판소리에는 ‘더늠’이라는 전승과정에서의 변화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풍자와 해학은 온전히 전해진 공통점을 갖는다. 대중문화에 풍자는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의 예능과 코미디에서 그런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최근 화제가 됐던 <무한도전>의 자막이었지만 사실 이런 모습도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한동안 <무한도전>는 풍자의 메카였던 적도 있었다. 또한 <개그콘서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무한도전>나 <개그콘서트>에서 풍자를 본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개그콘서트>의 쇠락은 풍자의 금지가 가져온 필연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이렇듯 풍자가 금지된 시대에 코미디는 뻔히 보이는 웃음의 금맥을 포기한 채 방황했고, 그 결과 외모비하나 가학 등으로 근근이 버티기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는 동안 웃음으로도 불만을 털어버릴 수 없는 세월이 켜켜이 쌓여왔다. 이런 상황을 인식한다면 결코 뉴스보다 나은 예능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의 정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풍자의 웃음까지 막는, 봉건시대보다 못한 짓만은 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얼마 전 CNN의 보도 중에 부패사건에 익숙한 한국인도 이번에는 크게 분노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분노의 배경에는 풍자의 웃음을 금지한 이유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제발 이제는 정치와 방송의 막장일치의 시대는 좀 끝내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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