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날 늦은 밤, 각 포털 검색 순위에 매우 낯선 일이 벌어졌다. 낯선 외국 곡이 검색어 상위를 차지한 것이었다. 영국 전설의 록밴드 레드 제플린의 대표곡 중 하나인 ‘Stairway To Heaven'을 대중이 그렇게까지 궁금해 한 데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JTBC 뉴스룸>의 엔딩과 함께하는 노래에 이 곡이 나온 것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주 엔딩곡은 그날의 앵커 브리핑과 뉘앙스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럼 도대체 낯선 레드 제플린의 노래에 대중이 뜨거운 관심을 보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날의 앵커 브리핑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날 앵커 브리핑의 주제랄까 키워드는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떠올리는 그 노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었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잊을 수 없는, 아니 '잊히지 않을 계절'

사람들은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이 매년 10월의 마지막 날만 되면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찾게 된다. 먼저 이용을 기억해봐야 해야 할 것이다. 그는 분명 80년대가 낳은 뛰어난 가창력의 가수였다. 1981년 5월 28일 열린 국풍81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당시 ‘바람이려오’를 압도적인 가창력으로 불렀으나 아쉽게도 대상을 받지 못했다.

국풍81은 5.18 광주항쟁 이후 민심을 호도하기 위한 대규모 관제축제였다. 단 한 번으로 끝난 이 국풍81에서 대상을 놓쳤거나 혹은 빼앗겼지만 이용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불후의 명곡 ‘잊혀진 계절’을 남겼다. 그래서 잊혀진 계절은 이용을, 이용은 국풍81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 이런저런 회한이 따를 수밖에 없다.

쿠데타와 군사독재의 80년대는 기억하기도 끔찍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도 다 있다. 그때와 달리 더 자유로워졌고, 모든 것이 풍족해졌지만 왠지 뭔가 잃고 사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때가 있다. 앵커 브리핑의 손석희가 말한 “까닭 모를 쓸쓸함과 처연함”의 의미를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잊을 수 없는, 아니 '잊히지 않을 계절'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2016년 10월의 마지막 날, 온 국민의 시선은 한 여인에게로 쏠렸다. 주로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던 ‘국기문란’이라는 말을 언론이 자발적으로 사용하게 만든 바로 그 사람 최순실이 검찰에 소환되어 포토라인에 서게 된 것이었다. 아마도 이제 한동안은 10월의 마지막은 이용보다 최순실이 먼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누군가는 했을 것이다.

손석희 앵커는 좀 더 명확하게 그 쓸쓸함의 이유를 설명했다.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이 모든 괴로움을 감당해야 하는가. 왜, 우리의 민주주의는 뒷걸음질 쳤는가”라고 말이다. 그 ‘왜’에는 절망과 분노 그리고 참담함 또 혼란스러움이 모두 담겨 있다. 또 그 ‘왜’라는 외마디 단어 속에는 부끄러움도 숨어 있다.

며칠 전 앵커 브리핑에서는 “뉴스와 절망을 함께 전달”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라는 손석희 앵커는 평소보다 이날의 표정이 어둡고 힘겨워 보였다. 누구에게나 어떤 하루 잠깐 감상에 잠기는 비밀스러운 낭만이 있는 법이다. 그런 것 중 하나가 10월의 마지날 날에 ‘잊혀진 계절’을 듣는 것이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잊을 수 없는, 아니 '잊히지 않을 계절'

그러나 이제 10월의 마지막 날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나 들으며 잠시 추억하고 덮어버릴 날이 아닌 것이 됐다. 앵커 브리핑의 표현대로 “2016년, 오늘의 가을은 그저 잊혀진 계절이 아니라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니 잊히지 않을 계절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최순실 게이트가 얼마나 큰 일인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결코 그 게이트에 포함시킬 수 없을지라도 장삼이사들의 소소한 추억의 날을 빼앗아간 것도 참 괘씸한 일이다.

손석희 앵커는 그래도 감정이 남았던지 이날의 엔딩 뮤직으로 레드 제플린의 노래를 선곡했다. “그녀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사려고 했다”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멀어진 손석희 앵커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와 시청자 사이에는 소심한 이심전심의 미소가 오갔을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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