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일요일, 아침부터 뉴스판은 뜨거웠다. 아주 오랫동안 뉴스의 주인공이었던 최순실 게이트의 장본인이 새벽에 입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국민들이 바라던 장면은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이 정도 사안이면 그저 흉내라도 공항에서 곧바로 체포되는 광경을 기대한 국민들로서는 실망과 분노를 또 가슴에 안게 됐을 뿐이다.

그리고 그날 밤, 언제나 드라마와 예능이 독차지했던 관심이 조금은 다른 곳으로 분산되었다. 그 첫 포문은 공교롭게도 JTBC <이규원의 스포트라이트>였고, 조금의 시차를 두고 KBS의 <취재파일K> 그리고 MBC의 <시사매거진 2580>이 동시다발적으로 최순실 사태를 다뤘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드러난 비선 실세, 최순실은 누구인가’

물론 KBS와 MBC의 경우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관한한 독보적으로 앞서왔던 JTBC만큼의 수준을 보이진 못했다. 두 방송사 모두 공통적으로 최태민과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갔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내보내는 정도였다. 이미 시청자가 알고 있는 수준을 넘지 못한 내용이 부실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적어도 타이틀만은 힘이 들어 있었다.

<취패파일K>의 타이틀은 ‘비선 개입 어디까지’였고, <시사매거진 2580>의 타이틀은 ‘최악의 국정 농단 최순실 게이트’였다. 그간 JTBC와 TV조선을 비롯한 종편과 한겨레, 경향신문이 온힘을 다해 보도하는 동안 영 딴청을 피웠던 것을 감안한다면 더 큰 분발이 필요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시작이라는 기대도 갖게 된다.

KBS 1TV <취재파일K> ‘최순실 국정 개입’ 어디까지…

며칠 전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대통령의 첫 시인과 사과를 기점으로 각 지상파 방송사 노조들이 탄식과 반성이 이어진 바 있었다. 그렇다고 공정보도를 막았던 구조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뉴스에서조차 외면하던 현안들을 짧게라도 다루기 시작한 것에 기대를 걸게 된다.

언론자유의 빙하기를 맞아 탐사보도의 겨울은 무려 9년간 지속됐다. 너무도 길었다. 이제 <PD수첩>의 기억은 너무 희미해졌고, 이 나라의 탐사보도는 실질적으로 전부 고사한 상태였다. 또한 목숨을 걸고 끈질기게 진실을 쫓던 사람들도 그 자리에 없다. 그러는 동안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부터 지금의 최순실 게이트 그리고 조금 멀게는 4대강까지 비극과 절망으로 이 나라를 잠식해왔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막장'…그러나 '땅끝이 땅의 시작이다' (뉴스화면 갈무리)

며칠 전 <JTBC 뉴스룸>의 앵커 손석희는 이문재 시인의 시구를 빌어 “땅 끝이 땅의 시작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당연히 시청자에게 한 말이었겠지만 그 행간에는 이제 막 침묵의 빙하를 깨고 거대 권력의 그림자를 향해 목소리를 내려는 모든 기자들을 독려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런 의지가 전해졌던지 아니면 단지 이 순간만 조금 느슨해진 것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이 앞 다퉈 성역처럼 멀리했던 최순실 게이트를 다룬 것은 분명 달라진 모습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얼어붙었던 한국 탐사보도의 매우 늦은 봄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미 꽃이 폈다가 지기를 아홉 번을 거듭했어도 몰랐던 그 봄을 맞고 싶은 마음에 기대와 희망이 막무가내로 앞서간다. 이 땅에 다시 탐사보도의 봄은 오는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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