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준상 기자] 지난 2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규탄 집회’가 열렸다. 당초 경찰은 3000~4000여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날 2만여명이 넘는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앞서 한겨레·경향신문과 종합편성채널 JTBC·TV조선 등의 언론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해 집중 취재·보도를 하며 사건의 내막을 온 국민에게 널리 알렸다. 이 같은 언론의 집중 보도가 2만명의 인파를 광장으로 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4일 JTBC<뉴스룸>이 ‘최순실 연설문 수정의혹’을 보도한 다음날인 25일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날 주요 포털 최상위 검색어에는 ‘박근혜·탄핵·하야’ 등이 올라 국민들의 분노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외에도 지난주 내내 주요 포털 최상위 검색어에 오른 것이 있었다. 바로 ‘JTBC<뉴스룸>·손석희’였다. 국민들은 박 대통령에 대해 분노하는 동시에 JTBC 손석희 사장과 JTBC기자들이 제작한 뉴스에 환호했다.

반면,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언론도 있었다. 바로 MBC다. MBC의 메인뉴스 <뉴스데스크>는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관련 이슈를 처음 언급한 20일 이전까지 침묵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뒤늦게 관련 보도를 시작했지만 함양 미달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심지어 25일 MBC<뉴스데스크>는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옹호하고 나서, MBC내부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었다.

한 유튜브 유저가 29일 업로드한 ‘MBC 기자들의 굴욕…”이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이날 열린 집회에서 MBC기자들이 시민들에게 욕설을 듣고 쫓겨나는 순간이 담겨 있다. 이 유저는 “오늘 집회 현장에서 MBC 기자들이 방송 준비를 하길래 바로 붙어서 촬영한 영상”이라며 “MBC가 해온 일들과 지금 남아있는 기자들이 과연 시대정신을 갖고 기사를 쓰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저들이 받은 가혹한 비난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쪽 언저리 어딘가가 아려오는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3년 6월 21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해직언론인 등의 복직 및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진술인으로 출석한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발언하고 있다(사진제공: 언론노조)

박성제 기자(전국언론노조 전 MBC본부장)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 MBC 주요 출입처 기자들 다 모아서 최순실 특별취재반을 구성해서 풀어 놓아도 절대 JTBC 같은 특종을 못한다”면서 “이빨 날까롭고 눈빛이 살아있는 셰퍼드 같은 기자들 몇 십명 있었지만, 모두 보도국에서 쫓겨난 지 4년이 넘었다”고 개탄했다.

<미디어스>는 28일 저녁 박성제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갖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다루는 언론과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공영방송 MBC와 MBC기자들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그가 MBC를 떠나 언론인이란 직업을 내려놓은 지 4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전화통화 내내 그가 MBC와 언론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발생했다. 주요 신문에서는 한겨레, 경향이 방송사 중에서는 종편 JTBC와 TV조선이 앞서서 단독 보도를 하며 이슈를 선점했다. 일각에서는 JTBC가 박근혜 사과를 이끌어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언론과 방송이 최순실 사태 보도에 대해 어떻다고 평가하시냐. 총평을 부탁드린다.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일이다. 소위 진보와 보수언론이 나눠져 있었는데 그 틀이 무너지면서 TV조선,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까지도 이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기사를 계속 쓰게 됐다. 이런 환경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다.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 JTBC의 특종 보도다. 이번 사태 보도를 JTBC가 선도했다.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이랄까. JTBC가 (다른 언론·방송의)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 KBS와 MBC는 공영방송이라는 조금더 특수한 임무를 띄고 있다. 특히 KBS와 MBC는 지상파방송으로 종편보다는 그 역사가 훨씬 더 깊다고 볼 수 있다. 지난번 페이스북에서도 밝히셨지만, KBS와 MBC 보도 수준은 정말 평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사태의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된다고 생각하나.

“KBS MBC만 놓고 말하면, KBS는 낙하산 사장들이 와있다. 청와대가 임명한 사장들이다. 그 사장들이 조직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KBS는 특히 경영진과 보도국 간부들에다 대고 한 마디만 하면 징계나 인사를 내왔다. 그래서 KBS는 청와대 임명 사장이 조직 장악을 완전히 끝난 상황이다. MBC는 이미 그 전부터 김재철 사장 때 장악이 시작돼서 파업 이후 아예 피를 바꿔 물갈이를 시켜놨다. 감시견에 비유하자면 KBS는 재갈이 물려있는 상태고, MBC는 이빨이 뽑혀서 어떻게 해볼 상황이 아니다. 반성할 수도 없는 게 기자들은 본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 그렇다면 JTBC와 TV조선이 MBC와 달리 이 같이 신속히 ‘특별취재팀’을 꾸려 보도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JTBC는 아무래도 세월호 등 이런 대형 사건 때부터 관련 보도를 회피하지 않았다. 지휘는 손석희 사장이 했을 것이고, 기자들이 ‘취재해도 나갈 수 있다. 내가 뭘 취재해도 지휘부가 방송을 내줄 것’이라는 손석희 사장과 데스크에 대한 믿음이 쌓였을 것이다. 사안이 터지면 바로바로 집중취재를 할 수 있는 체제가 세월호 이후부터 돼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MBC 기자들이 JTBC의 모 기자처럼 최순실 PC를 우연히 받았다고 쳐보자. 그래도 그 기자는 이를 보도하지 못할 것이다. 그 기자는 자기 검열을 할 것이고, 보도를 못하게 하면 보도를 꼭 해야 한다고 우기지도 못할 것이다”

- KBS, MBC, SBS, YTN 등 지상파와 보도전문채널이 뒤늦게 ‘최순실 특별취재팀’을 꾸렸다. 현재 내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사실 이 같은 공정보도, 심층취재 등에 대한 요구는 과거에도 있어왔다. 하지만 이번 언론계 내부에 자성의 목소리는 사뭇 달라보인다. 이번 계기를 통해 언론계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하시나?

“저는 별로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MBC가 특별취재팀을 꾸렸다. 그러나 어제(27일) 기사를 보라 PC입수 과정을 기사를 쓰고 있다. 마지못해 한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청와대 눈치를 계속 보고 있다. 특별취재팀을 꾸릴 거면 관련 경험이 있고 제대로 취재할 수 있는 그런 기자들을 불러다 꾸려야 한다. MBC의 정치부, 사회부, 검찰에 시용경력 기자들이 있다. 시용경력 기자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정말로 무슨 기사를 써야 할지 잘 몰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 이번 최순실 사태는 특별취재팀을 꾸려서 샅샅히 취재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 속보나 쓴다든지 인터넷과 타사 신문을 정리하는 수준이다. 특별취재팀은 면피용이고, 오히려 특별취재팀이 최순실과 관련해 청와대 편드는 뉴스를 만들 수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해 MBC특별취재팀은 면피용 플러스, 청와대를 지원해주는 특취반이다”

- 결국은 구조의 문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현재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안이 국회에서 계류중이다. 이 개선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통과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

“구조적인 문제는 당연하다. 그런데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짚어줘야 한다. 예를 들면, 지금 안에 있는 기자들이 시용이든 경력이든 기자들 이가 다 빠져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한 마디로 에너지가 없고 시키는 대로만 하는 조직이 돼버린 것이다. 내가 만약 앞에 있었으면 많이 혼을 냈을 것이다. 노동조합이나 기자협회장이 찍소리 내는 것과 기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다르다. 쫓겨나더라도 다시 혼나고 찍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게 안타깝다.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은 당연히 가야 한다. 총선 이후 야당의 MBC 출신 선배도 많고 야당 차원에서 이를 해결하겠다고 입법도 했다. 그러나 저는 그냥 마음 비웠다. 쭉 지켜보니까 국회 차원에서 이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안에서 뒤로 빠지는 것 같다. 왜냐면 사람들이 잘 모른다. 사람들은 ‘공영방송 KBS·MBC 없어도 JTBC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라고 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비극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MBC 빨리 돌아와야지 하는데, 이 상태로 더 가면 게임이 끝날 것 같다. 아무도 MBC를 그리워하지 않고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으니, 야당 입장에서도 법을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다. MBC가 예능이나 하는 방송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 MBC가 공정한 보도, 바른 언론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싸우다가 해직됐다. 그만큼 MBC에 대한 기대가 많을 것 같다. 현직에 있는 MBC 동료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한 마디만 하겠다. 그만 밟혀라. 꿈틀이라도 해라. 지렁이도 아니잖냐. 조금이라도 어떻게 해봐라. 그래야지 나중에 시청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 그런데 이대로 계속 가면 타의에 의해서 MBC가 바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물갈이 되는 거다. 그땐 또 어떻게 할 거냐. ‘이제 해방됐다’고 하면서 옛날 MBC처럼 돌아갈 수 있나. 아니다. 기사가 안 되더라도 혼자서 취재하고 데스크에 들이밀고 조직해서 안 되면, 안 됐다고 <미디어스> 기사에라도 나가야 한다. MBC 기자들이 살아있다는 모습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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