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졌던 도우와 수아가 서로 생각지도 못한 곳, 제주공항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러나 단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이 둘을 잇는 인연의 끈이 너무도 질기다는 느낌이다. ‘우연이란 운명이 길을 잘못 찾은 것’이라는 대사를 어떤 드라마에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이들의 우연을 설명하기에는 그 대사가 필요할 것 같다.

제주공항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최수아는 문득 혼잣말로 “다시 공항이네”라고 했다. 그 말은 너무도 드러나는 복선이어서 마치 스포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 말처럼 최수아는 그녀의 타고난 심성에 직업정신까지 더해진 친절함 때문에 애써 피했던 서도우와 맞닥뜨리게 됐다. 그 충격, 그 놀라움과 반가움에 최수아는 그 자리에 언 듯이 굳을 수밖에는 없었다.

KBS2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

그래, 운명이 시키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뼈와 달리 관계란 한번 부러진 자리가 더 단단해지는 법은 없다. 우연이라는 것이 운명이 길을 잘못 찾은 것이라는 말에는 그런 슬픈 결말도 암시하고 있다. 물론 서도우는 이미 아내와의 이혼을 결심하고, 통보했고 그렇게 될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메리 이모가 두고 간 짐 속에서 찾은 애니의 휴대폰에 저장된 김혜원과의 통화에 더 큰 충격과 분노를 겪었으니, 서도우와 김혜원의 관계는 더 이상 하루도 부부가 아닌 사이가 됐다고 해야 한다. 최수아 역시 결혼 생활이 분명 위태로워 아무래도 갈라서게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도우와 최수아는 결합하지 않을 것 같다. 그것에 대한 단서는 의외로 최수아가 남긴 복선인 “다시 공항이네”로 삼고 싶다. 최수아가 중얼거렸던 “다시 공항이네”는 서도우를 다시 만난다는 의미인 동시에 공항이 갖는 또 다른 의미 떠남을 암시할지 모른다. 그 한 마디에 짧은 복선과 긴 복선을 모두 담은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KBS2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

무엇보다 슬픈 감성에 근본을 두고 있는 이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이기 때문에 더욱 결말이 흔히 말하는 해피엔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이 드라마의 끝과 여운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마지막에 소란스러운 웨딩마치 대신에 김광석이나 루시드 폴의 잔잔한 노래가 더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벌써부터 우울해질 필요는 없다. 어쨌든 이들은 결혼이라는 결과와 상관없이 가장 순수한 사랑을 다 만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만이 순수할 수 있다. 가을을 그린 수채화 같은 이들이 수많은 애틋한 시간들의 끝에 결혼이라는 팍팍한 현실로 들어가는 것을 꼭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지도 사실 의문이다.

KBS2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

어두운 시골 골목길, 낯선 여자가 내 등을 스쳐 천천히 지나간다. 혹시 누구 아닐까도 잠시 잠깐 생각했지만 그럴 리는 없지만 그 여자 생각에라도 남자는 자전거 전등을 비틀어 여자의 길을 밝혀준다. 아마도 여자가 아니라 누구라도 서도우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최수아나 서도우 두 사람 모두 천성적으로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니까.

<공항 가는 길>에는 하루에 최소한 하나 이상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장면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11회에서 가장 좋은 장면으로 이것을 뽑고 싶었다. 사무치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도 일상은 여전히 곧은 모습을 유지하는 사내의 모습은 근사했다. 보통은 술독에 빠져 무척 방황하는 모습이어야 하겠지만 서도우는 그러지 않는 것이, 속으로 그 모든 감정의 무게들을 가라앉히는 것이 더 어울린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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