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우와 최수아의 3무 사이를 깬 그날 밤에 대해서 연출은 구체적인 사실을 흐릿하게 처리했다. 시청자의 상상에 맡기겠다는 것이거나 혹은 그 추정이 맞지만 굳이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편견을 갖게 하지 않겠다는 연출의 판단일 것이다. 물론 연애의 흐름으로 보아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 시점이 다소 빠르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공항 가는 길>은 ‘그래 봤자 불륜’이라는 냉소를 극복하고 상당한 지지층을 확보해왔다. 거기에는 비록 불륜의 상황임에도 두 사람의 관계가 통속적인 수준을 넘어선, 정신적이고 순수할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크게 작용했다.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는 그런 뉘앙스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KBS2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

그런데 서도우와 최수아가 밤을 함께 보낸 이후 급속도로 시청률이 하락했다. 물론 시청률 하락의 원인이 단지 그것뿐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할 것이다. 반대로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때를 보자면 최수아와 서도우의 어머니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맑게 펼쳐진 6회였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시청자는 지극히 깨끗한 가을동화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이라 여겨진다. 불륜이지만 절대 불륜으로 전락하지 않는, 어쩌면 불가능한 연애를 기대했던 것은 아닐지 모를 일이다. 만약 두 사람이 성인의 연애를 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아주 훗날의 일이 되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껏 깨끗했던 위로의 커플 서도우와 최수아에게 격정은 기대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산책 같은 남자라더니...

KBS2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

한편 이 드라마에는 하나의 스릴러가 존재한다. 애니의 죽음과 김혜원의 정체. 서도우와 최수아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들 사이의 미스터리한 존재 김혜원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져만 갔다. 시청자 역시 피해자면서도 좀처럼 동정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상 악녀인 김혜원에게서 어떤 반전이 일어날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김혜원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본래는 김혜원이 남편인 서도우의 외도를 알아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보통의 시선에서 많이 벗어난 김혜원의 동선이다. 그러던 중 서도우는 마침내 애니의 메일 비밀번호를 알아냈고, 애니가 보내고 받은 메일들을 확인하면서 충격적인 사실과 맞닥뜨렸다. 애니의 메일 속에서 김혜원은 거짓과 의혹의 존재였다.

하필 그 메일을 보고 경악해 하는 서도우 앞에 김혜원이 등장했다. 김혜원을 바라보는 서도우의 시선에 분노가 이글거렸다. 서도우에 입에서 무서운 말이 튀어나았다. “당신 누구야?” 몇 년을 산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는 남편, 남편에게 이런 말을 듣는 아내의 어쩌면 무척 비슷할 것 같은 감정이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KBS2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

그런데 그 말은 시청자가 진작에 하고픈 것이었다. 대관절 김혜원의 정체는 무엇일까? 김혜원은 주변을 속여서라도 일을 따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남편 대신 일을 선택하라는 말에도 김혜원은 화를 내기는커녕 대답을 주저했다. 김혜원 스스로 남편의 외도를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데 이용하려는 생각도 가졌던 바 있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종합해보면 김혜원은 애니에 대해서는 온통 거짓말뿐이고, 남편 서도우에 대한 애정도 없어 보인다. 친아빠와 도우아빠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비밀을 간직해야 했던 어린 애니를 생각한다면 김혜원은 불륜보다 더한 패륜을 저지른 것이나 다름없다. 김혜원에게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정말 묻고 싶다. 김혜원 당신 누구야?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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