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 제195조. 이렇게 돼있다.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될 때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해야 한다.’ 검찰이 통상 인지수사를 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검찰이 형사소송법 제195조를 스스로 부정하는 듯한 입장을 발표했다. 재미있다. 존재의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듯한 입장 발표라. ‘제3자 개입’이라도 하란 말일까. 검찰 기류를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대체 어쩌라고?’.

공정한(?) 수사 위해 사건 배당을 하지 않겠다? 그럼 특검 도입할까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삼성 이건희 회장 등을 업무상 횡령,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6일 검찰에 고발했다. 그런데 검찰 공식입장이 ‘코미디’에 가깝다.

▲ 한겨레 11월7일자 10면.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른바 ‘로비 대상 검사 명단’ 제출이 반드시 필요하며, 명단 확인 없이는 공정한 수사주체를 정해 사건을 배당하는 것이 어렵다.”

잠깐 정리를 해보자. 질문 하나. 검찰의 이 같은 입장은 검찰 스스로 ‘떡값 검사’의 존재를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인가. 답변. 그런 것 같다. 명단 확인 없이 사건 배당 자체가 어렵다고 했으니 자기네들이 자기네들을 못 믿겠다는 소리 아닌가.

질문 둘. 그럼 김용철 변호사가 ‘떡값 검사 리스트’를 공개하면 되지 않나. 답변. 아니다. 김 변호사가 그것까지 하면 대체 검찰은 뭘 하란 말인가. 검찰이 미덥지 못해도 우리 ‘밥 그릇’은 빼앗지 말자. 관련해서 한겨레 오늘자(7일)를 보도를 인용한다.

“‘떡값 검사’는 고발장에 담긴 삼성의 뇌물공여 혐의를 수사하며 밝혀내야 할 사안이지 고발인이 굳이 공개할 대상은 아니라는 점에서 검찰의 변명은 궁색하다.”

동아 중앙일보 ‘노골적인’ 김용철 변호사 흠집내기

▲ 중앙일보 11월7일자 8면.
검찰의 공식입장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 마디로 검찰이 고발인을 향해 ‘리스트 내놓지 않으면 우리 수사 안해’ 이렇게 외치고 있는 형국인데, 모양새 참 ‘거시기’ 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오늘자(7일) 대다수 신문의 보도는 참여연대·민변의 고발 소식과 검찰의 입장을 ‘비교적 중립적으로’ 싣고 있다.

하지만 삼성과 ‘사돈지간’인 동아일보와 ‘특수한 관계’인 중앙일보. 드디어(!) 오늘자(7일)로 ‘커밍아웃’을 했다. 검찰 주장의 허점과 논리적 모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고, 검찰 주장을 등에 업고 김 변호사에게 “떡값 검사 리스트 공개하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동아 중앙일보. 좀 노골적이다. 마치 삼성이 지난 5일 발표한 해명자료를 보는 것 같다. 이 두 신문은 오늘자(7일) 8면(중앙)과 12면(동아)에서 '난데없이' 김 변호사의 검사시절 행적(?)에 의혹을 제기하더니 사설에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삼성 측은 해명 자료를 통해 김씨가 폭로한 모든 사안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씨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말로만 폭로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은 김씨의 진실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특히 그가 최근까지 삼성으로부터 받아온 거액의 고문료가 중단될 시점에 의혹을 폭로하겠다고 삼성 측에 알려 왔다는 것은 그가 제기한 의혹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만일 이번 폭로가 김씨의 개인적인 반감에서 비롯된 돌출 행동으로 밝혀진다면 김씨와 폭로 회견을 주선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그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중앙 7일자 사설 <검찰의 손에 넘겨진 삼성의 의혹> 가운데 일부 인용)

▲ 중앙일보 11월7일자 사설.
“김씨는 검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삼성에 들어가 1997년부터 7년 동안 102억 원을 급여 등으로 받았다. 퇴직 후에도 올해 9월까지 3년 동안 고문료로 월 2200만 원을 수령했다. 스스로 떡값을 배달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갑자기 후한 대접을 해준 기업을 공격하고 나서는 의도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동아 같은 날짜 사설 <김용철 변호사, 떡값 명단 있으면 밝혀라> 중 인용)

▲ 동아일보 11월7일자 사설.
물론 동아와 중앙은 삼성도 이번 사건을 투명경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면배치 등을 고려했을 때 삼성에 대한 주문은 ‘곁가지’일 뿐 정작 속내는 위에서 언급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차명계좌 공개한 지가 언제인데 … 금융당국은 ‘귀차니스트’?

사실 검찰 못지 않게 ‘코미디’를 선보이는 정부 당국이 또 있다. 이른바 금융계의 검찰로 불리는 금융 감독기관. 검찰이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면 이들은 ‘귀차니스트’의 전형을 보여줌으로써 자신들도 ‘코미디’에 재주가 있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고 있다.

역시 한겨레 7일자 보도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코미디를 한번 감상해보자.

▲ 한겨레 11월7일자 10면.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 차명계좌’를 공개한 지 열흘 가까이 되도록 우리은행과 굿모닝신한증권이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또 금융감독당국은 이들 금융회사의 자체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를 미루고 있다 … 우리은행의 한 임원은 ‘김 변호사가 은행에 직접 찾아와 요구를 하지 않은 한 김 변호사 명의의 계좌를 조사하는 것은 금융실명제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계좌를 열람해 볼 수 없다’고 말했다 … 하지만 우리은행의 이런 주장은 이미 우리은행이 김 변호사의 동의 없이 삼성그룹에 차명계좌를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에 비춰 설득력이 없다. 또 전문가들은 위법 혐의가 있는 정보가 제공됐을 때 조사에 나서는 것은 금융회사의 의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을 다른 언론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동아 중앙일보를 비롯해 ‘다수 언론’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삼성 비자금 관련 보도는 늘어나고 있지만 논점 자체가 흐려지면서 사태가 본질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보도를 한다고 해서 다 같은 보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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