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생전에 그에게 결코 ‘동의’하지 않았던 몇 사람이 어울려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그의 영결식이 치러지고 난 늦은 밤이었다. 노래는 내남없이 구슬펐다. 낮에 TV 생중계를 보거나 서울광장에 서서 한소끔 눈물을 몰래 훔친 것이, 일주일 내내 머리가 멍하게 아팠던 것이, 그 순간만큼은 쑥스럽거나, 이물스럽지 않았다. 그의 이념과 정책에 동의하지 않은 것과 그의 죽음에 연민하는 것은 모순돼 보이지 않았다.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나는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불렀다.

노래를 마칠 무렵, 그의 죽음과 관련해 글을 몇 편 쓰고도 정작 그이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삼스런 깨달음이었다. 안구 건조증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들 만큼 처음 한동안은 세상의 ‘지배적 슬픔’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의 죽음에 몰입하기보다는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있는 것, 그 ‘죽임’의 힘들을 날선 눈으로 응시했을 뿐이었다. 가슴이 아픈 게 아니라 두통이 심했는데, 그 두통의 진원지는 몰입되지 않는 내 가슴인 듯싶기도 했다. 영결식 전까지는 그랬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여의도통신

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나(그리고 영결식날 밤늦도록 구슬픈 노래를 불렀던 우리)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그는 재임기간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을 살뜰히도 밀어붙인 대통령이었다. 아프간·이라크 파병과 천성산 터널 공사를 강행했고, 황우석 박사를 눈감고 두남뒀다. 그때마다 기자로서 대립각을 세웠고, 이겨보려고 머리를 쥐어짰고, 술자리에서 선후배들과 밤늦도록 울분을 토했다. 기자질을 잠시 관둔 사이에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한·미 FTA를 관철했다. 불편한 감정은 아니어야 옳다. 적대감이어야 옳다. 그러나 불편함이 앞섰다. 그는 적대만 하기에는 ‘난처한’ 존재였다.

그를 겨누는 것은 자주, 겨눠야 할 것을 온전히 겨누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적대해야 할 대상 사이에 불쑥 불쑥 끼어들어 시야를 가렸고, 전선을 교란시켰다. 그는 나의 적이기도 했고, 적의 적이기도 했다. 그는 이편과 저편 사이를 부유하는 존재 같았다. 그러면서 그는 내 믿음을 지키려면 결과적으로 그의 이익으로 환원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정치구도를 짜내기도 했다. 그는 탄핵을 피해가지 않았고, 나는 민주주의를 위해 대응했지만, 승리한 것은 그였다. 그는 다시 부유했다. 그런 그가 나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불편함은 그의 죽음 이후로도 연장된 듯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로 달려가거나 서울 덕수궁 앞에서 밤을 새며 눈물을 쏟았고, 그들이 하나같이 노사모도 아니었을 테지만, 나는 그의 죽음에 좀체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죽음이 부르는 보편적 슬픔에 공감하는 것이 꼭 저런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이미 진부해진 언술이지만, 용산 참사 희생자들과 택배 노동자 박종태씨의 죽음에 견줘 슬픔의 질량이 그토록 압도적이어도 되는 것인가 싶었다. 동일시와 부채감,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결합된 사회심리가 왜 유독 그의 죽음에만 투사되는 것인가 말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나의 팽팽한 긴장감은 영결식 당일 해소됐다. 탄성계수를 넘어 ‘팽’ 하고 끊기거나 축 늘어져버린 게 아니라, 차츰 헐거워지다가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자칫 차이를 혼미하게 만들기 쉬웠던 그의 ‘통치술’에 맞서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그에 대한 총체적 부정으로 앙금졌던 지난한 시간들이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민심의 눈물에 차츰 용해되고 있었다. 내 눈에도 물기가 어렸다. 푸른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특별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미워도, 마음속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의 특별함은 대통령으로서 그가 펼쳤던 정책과는 층위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특별함은 또한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고서는 성립하지 않는 특별함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정책이 ‘인간 노무현’과 온전히 분리되는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은 하나의 계열체(패러다임·paradigm) 관계에 놓일 수 없는, 오히려 하나의 통합체(신탬·syntagm) 관계 안에 포섭되는 것이었다. 그의 특별함은 그처럼 분열적이되 분리될 수 없는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이 만나 빚어진 길항적인 것이었고, 그런 그가 나에게는 애와 증이 뒤채는 대상이었던 것 같다.

생전 그를 사랑으로만 대했던 이들과 나처럼 복잡한 감정으로 불편해했던 이들이 한데 어울려 그의 서거를 애도했다. 애도의 질감에는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는 사람의 얼굴을 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각인된 상징이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몰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대통령은 다시없을 거라고. 그러나 그런 대통령이 다시 있어서도 안 된다. 그는 한국 정치사의 특수한 국면에서 특별한 역할 모델을 수행한 대통령이었다. 한국 정치사가 언제까지 특수한 국면에 놓이는 건 불행한 사태다. 대통령의 자리가 우리 삶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지금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에 대한 평가를 인색한 찬사로만 맺을 수 없어, 청자(聽者)가 특정되지 않아 행간이 드넓은 그의 유서를 나름대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그의 죽음에 관한 타살설은 이 유서 한 장으로 일축된다. 14문장은 하나하나 삼엄하게 절제되어 있다. 온전히 그의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죽음을 결심한 이의 비장함은 산 자가, 더욱이 죽이려는 자가 흉내낼 수는 없다. 가장 그다운 문장이다. 명문이다. 이런 유서를 남길 수 있었다는 건 오로지 그의 홍복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누구에게나 삶은 타인에게, 세상에게 빚지는 것이다. 정치인의 삶은 더욱 그러하다. 사랑받는 일은 신세지는 일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진 삶은 너무 많이 행복한 삶이다. 컴퓨터 기록으로 보아, 이 첫 문장은 맨 마지막에 쓰였다. 세상에 던지는 마지막 곡진한 인사말이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여러 사람’과 ‘고통’은 직접적으로는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조사를 받고 영어의 몸이 되거나 여론의 구설에 오른 이들을 아울러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그의 회한의 영역이 크게 확장되었다면 대통령으로서 그의 권력작용이 미쳤을 수많은 이들의 직간접적 고통까지 포함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다만 이어지는 문장을 감안하면 그의 회한의 영역은 협애해 보인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주어는 그 자신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다음 문장을 통해 주어가 한정된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다만 그의 고통은 자기만의 고통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고통이 전이돼온 고통이기도 하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본질적 동기로 보인다. 그의 일대기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끝없는 도전이었다. 그는 더는 승부를 걸 수 없고, 의탁할 수밖에 없는 시간 앞에서 절망했을 것이다. 그는 자기본위적인 죽음을 선택한 셈이다. 하지만 그에게 자기본위는 타인을 지향하는 것이었으리라. 그의 생애가 그러했듯이.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그가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은 읽고 쓰는 것이었다. 읽고 쓰는 것조차 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의 상태란 무엇일까. 사마천은 궁형(宮刑·옛 중국에서 행해진, 남성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에 처해지고도 <사기>를 집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자기본위적 죽음이기 전에 궁형보다 잔혹한 명예형, 즉 타살은 아니었을까.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그의 선택은 의연했다. 명예를 지키려는 자의, 슬픔을 졸여낸 담담함으로. 조중동은 이를 모든 사리와 분별을 뭉개버리는 무화(無化)의 개념으로 왜곡했다. 교묘할뿐더러 천박하기 그지없는 무리들.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가깝게는 가족과 측근에게 건네는, 멀게는 그에게 부채감을 가진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송신하는 당부다. 삶의 법정 마지막에 남긴 최후진술. 내 비록 그대들이 돈을 주고받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그 때문에 이 고통을 받고 떠나가지만, 나의 고통과 떠남은 그대들 탓이 아니니, 나를 고통으로 몰아간 자들은 따로 있으니, 나에게 미안해할 것 없다. 그렇더라도 나에겐 무한 도덕성의 책임이 있으니 그 도덕성을 잔인하게 물은 자들을 미워하지도 마라. 그게 내가 걸어온 길의 완성이다. 여기까지다.

화장해라.
끝없는 도전으로 삶을 온전히 소진한 것이니 떠나는 것은 차라리 가볍다. 참칭 대통령들처럼 너른 유택을 짓는 것은 오히려 나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바람처럼 흩어지리라. 잘 들렀다 간다.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그러나 떠남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빈자리를 남기는 것이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나의 뜻을 겨우 전하도록 하라, 나지막한 목소리로.

오래된 생각이다.
삶을 닫는 글, 그 글을 닫는 마지막 문장이다. 삶을 진지하고 치열하게 산 사람에게 돌연사는 없다. 늘 죽음을 생각하기에 삶이 그러할 수 있었다. 이 문장은 일곱 글자로 기술한 그 자신의 일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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