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 에헤라디오 정동하는 4연승에서 멈춰야 했다. 어쩌면 음악대장만큼 장기 집권도 가능하리라 봤던 정동하였던지라 아쉬움도 클 수밖에 없지만, 한편으로는 그 연승을 막아 세운 이가 팝콘소녀라는 점은 그 아쉬움을 조금은 덜게 해주었을 것이다. 정동하에게도, 팬들에게도 말이다.

그러나 다른 때와는 달리 복면가왕의 주인이 바뀐 것보다 팝콘소녀가 3라운드에서 부른 노래 한 곡의 충격, 그 의미가 더욱 컸다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인 취향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올해 들은 노래들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다. 아니 절망하게 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죽어도 좋고, 죽을 것만 같은 치명적인 감정에 휘말려야 했기 때문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이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해 배를 난파시켰다고 하는데 팝콘소녀의 노래가 딱 그 세이렌의 노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많은 경우에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티비가 아닌 현장에서 이 노래를 들은 청중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레드벨벳 슬기와 함께 1라운드에서 소녀시대의 노래를 불렀던 팝콘소녀는 2라운드에서는 원더걸스 예은은 만났다. 예은으로서는 대진운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악동뮤지션의 <RE BYE>를 정말 완벽하게 불렀지만 프라이머리의 <씨쓰루>로 맞선 팝콘소녀를 넘어서지 못했다. 점수차도 민망할 정도로 커서 아쉬웠지만 홀로 선 예은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로서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3라운드에 오른 팝콘소녀는 28년의 뮤지컬 경력을 가진 빨간머리앤 최정원을 만나서도 거침이 없었다.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를 부른 최정원의 노래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고, 관록만큼이나 풍부한 감성으로 듣는 이를 슬픔으로 만족시켜 주었다.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

그러나 팝콘소녀는 너무도 강력했다. 임재범의 1997년 노래 <그대는 어디에>를 3라운드에 부른 팝콘소녀는 대단히 활발했던 1,2라운드와 달리 매우 정적인 자세로 전주를 음미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노래는 노래가 아니었다. 아직 이 노래를 듣지 않았다면 꼭 듣기를 권하지만 혹시 지금 몹시도 행복한 사람이라면 듣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팝콘소녀가 해석한 이 노래는 가창력이라는 말을 쓰기가 민망하고 또 무의미했다. 영혼까지 찢어버릴 듯한, 노래가 아닌 절규였다. 그 처절함은 지금 아무리 행복하다고 할지라도 막아낼 수 없는 비애 그 자체였다. 아무리 강한 애수의 노래라도 처음 듣고 다시 한 열 번쯤 들으면 덜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팝콘소녀의 <그대는 어디에>는 열 번을 듣고, 그 이상을 들어도 똑같은 감성의 몸살을 앓게 된다.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

노래를 노래 이상으로 듣고 감정적으로 오래 휘둘리기는 정말 오랜만인 경험이었다. 정말 위험해서 서둘러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자꾸만 그 노래에 더 깊이 빠져드는 개미지옥의 체험이기도 했다. 고통스러운데 행복한 비조화의 감정에 허덕였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 주다. 이렇게 높아진 기대치가 오히려 팝콘소녀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만 한다면 팝콘소녀를 복면가왕에서 오래 보게 될 것은 분명한데, 첫 인상이 너무 강해서 사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게 된다. 그만큼 기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쉬움이 남았다. 팝콘소녀가 부른 <그대는 어디에>가 음원으로 발표되지 않은 것이다. 불필요한 음향의 개입이 없는 방송사의 무편집 영상을 기대해볼 수밖에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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