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정감사가 4일째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새누리당이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국회 일정 보이콧'이란 초강수를 두고 있다. 새누리당의 초강경 모드로 인해 국회 정상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단식을 이어가며 정 의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고, 28일에는 '정세균 의장 사퇴를 위한 새누리당 당원 규탄대회'가 벌어지기도 했다.

새누리당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 여론은 우호적이지가 않다. 여론이 새누리당에 우호적이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28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첫째, '정당성'의 상실이다. 새누리당은 정세균 의장이 편파적 의사진행을 했다며 정 의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 다수의 국회의장을 배출했던 새누리당은 그야말로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밥 먹듯이 요구했던 정당이다. 야당의 반대에도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을 무리하게 통과시키기 위해 합의는커녕 '강행'을 요구해 왔던 정당이다.

가까운 예로 테러방지법 처리가 있다. 새누리당 출신 정의화 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고, 이에 야당 의원들이 초유의 필리버스터로 맞섰지만 새누리당은 관철시켰다. 또한 새누리당은 노동4법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정의화 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회의장에게 정치적 '편향성'을 요구해 온 새누리당이 정세균 의장에게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사퇴를 요구한다는 것에서 정당성을 찾기가 어렵다. 새누리당의 과거가 발목을 잡고 있다.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을 이야기하는 새누리당에 대다수 국민들의 반응이 싸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둘째, 새누리당의 '태도변화'다. 박근혜 정권 4년 간 유행했던 말이 있다. 바로 "대통령의 말은 대통령의 말로 반박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것을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은 줄곧 야당을 향해 '소수당의 횡포'라는 비난을 가해왔다. 그리고 20대 국회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한 작금의 새누리당은, 그들이 그토록 비난하던 '소수당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

오히려 과거 야당의 투쟁은 별 것 아닐 정도의 '초강경'한 모습은 경이롭다. 28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강고한 단일대오로 강고한 당론대로 우리는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입에서 '투쟁'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새누리당의 말은 새누리당의 말로 반박 가능하다.

셋째,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새누리당이 저지르고 있는 '관례의 파괴'다. 합리성을 토대로 전통적으로 이어 온 관례를 수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보수주의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을 자처하면서도 이를 스스로 파괴하는 행각을 벌이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큰 관례를 깼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도 어려운데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거부한 것이다. 대통령의 장관 해임건의안 거부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가 대통령의 해임안 거부 이유는 비합리적인 면이 굉장히 많다. 도대체 경제위기와 농림부 장관의 해임이 무슨 관계인지 알 수가 없다. 합리성을 바탕으로 전통과 관례를 중시하는 보수정당이라면 분노해야 마땅한 부분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결정을 환영하는 이중적 작태를 보여줬다. 보수주의 정당의 정체성을 스스로 저버림과 동시에 '친박당'이라는 것을 시쳇말로 '셀프인증'한 셈이다.

▲27일 김영우 의원이 국방위원회 국정감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히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김영우 의원을 저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국방위원장인 새누리당 소속 김영우 의원은 자당의 몽니를 보다 못해, 자신은 국정감사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소한의 보수정치인으로의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지도부와 김무성 전 대표까지 나서 국방위원장실의 문을 잠그고 김영우 의원을 '감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국방위원회 국정감사가 정상 진행된 29일에도 국방위 국감 개최에 앞서 새누리당 국방위 소속 위원들이 나서 김영우 의원을 설득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정당성을 잃은 정당, 걸핏하면 태도를 바꾸는 정당, 보수의 본분을 저버린 정당을 지지해줄 국민은 없다. 새누리당은 지금이라도 20대 총선 민심을 되돌아보면서 국감 보이콧을 철회하고 보수정당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정세균 의장의 사퇴를 위한 투쟁을 할 것이 아니라, 국감에 복귀해 여야 협치를 실현하는 것이 새누리당이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가장 빠른 길이다. 과거 새누리당이 했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국회로 돌아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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