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홍보를 위해서 티비 예능에 출연했다. 배우와 감독은 10여 년 간 같은 소속사에서 정을 나눈 친한 형 동생 사이다. 게다가 감독은 오랜 배우 생활 경험을 토대로 처음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을 잡았다. 동생은 그런 형을 위해 기꺼이 카메오로 출연을 했다.

그런데 그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예능 출연에 카메오로 단 두 장면에 출연한 배우가 함께 나온 것부터가 심상치 않은 파란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박철민이다. 개그맨보다 유행어가 더 많은 배우 박철민. 그는 늘 유쾌했고, 영화에서는 카메오였으나 그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예능에서는 주연보다 더 주연급의 활약을 펼쳤다.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애드리브의 달인답게 박철민은 상상을 뛰어넘는 말빨을 뽐냈다. 출연료로 백화점 상품권 10만 원짜리만 받았다며 “이것은 봉투에다 엿을 넣어준 격”이라며 거친 듯 고급스럽게 감독 조재현을 디스하고 나섰다. 그렇게 포문을 연 조재현과 박철민의 아재 버전 톰과 제리의 대격돌의 서막이 열렸다.

그리고 그 전쟁의 클라이막스는 박철민에 의해 완성되었다. 지금까지의 디스도 상상키 어려운 독설 중의 독설이었는데,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레전드급 디스였다. 드라마 장르를 물어보는 대목에서 박철민은 하찮은 드라마라며 조재현이 감독뿐만 아니라 각본까지 쓴 것은 너무도 기가 막힌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개봉을 말려야 돼요”라고 비분강개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이어 “극장도 많이 열지 않고 조그만 열기 때문에 여러분이 조금만 신경을 안 쓰면 안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라며 조재현을 향한 독설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박철민의 디스를 온몸으로 받은 조재현은 물론이고 스튜디오는 웃음으로 왈칵 뒤집혔다. 아, 이런 역발상의 홍보라니. 박철민의 말주변에 정신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유쾌했다.

조재현도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박철민이 불필요한 애드리브를 하다가 곁에 있던 여배우를 주저앉혀서 꼬리뼈를 상하게 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박철민의 감독 디스에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말았다. 완벽하게 형 조재현은 제리에게 당하는 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다. 박철민이 개봉을 말려야 한다는 말부터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참지 못할 수준으로 생긴 것이다. 신경을 조금만 안 쓰면 안 볼 수 있다고 강변을 했는데도 이 영화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포털에는 그들의 이름과 함께 이 영화가 검색어에 등장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아무래도 박철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한번 봐야겠다고 주말을 벼르는 사람들도 꽤 많이 생겼을 것만 같다. 예전에 조재현이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연극 이야기를 했을 때 그 효과로 예매가 1만장이나 나갔다고 하니 이번에도 그 효과를 톡톡히 볼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한 박혁권의 연기에다가 조재현의 연출이라니, 이래저래 호기심과 기대가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조재현과 박철민의 유쾌한 디스전이 끝나자 그때까지 조용히 토크를 관망하던 배우 이준혁이 나섰다. 언제나 그렇듯이 라스는 또 한 명의 걸출한 예능 기대주를 발굴한 것은 두 말할 것 없다. 이준혁은 김국진도 인정한 것처럼 말을 아주 재밌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같은 말이라도 이준혁의 그 독특한 얼굴과 적절한 표정, 몸짓이 더해져서 도저히 시선을 돌릴 수 없는 시선강탈자의 면모를 보였다.

요즘 주중 심야예능에서 <라디오스타>가 그나마 웃음을 보장하고 있다지만 이번처럼 시종일관 참지 못할 정도로 계속 웃어본 기억은 없다. 조재현이 주연배우도 아닌 박철민과 이준혁을 굳이 <라디오스타>에 함께 출연시킨 이유가 있었다. 요즘 이모저모 불안하고 짜증날 일만 터지는데 그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실컷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마운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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