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259일의 투쟁, 그 질기고도 뜨거운 과정을 또렷하게 지켜본 나로서는 솔직한 심정으로 YTN사태가 확산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어깨위에 곰 10마리가 올라가 있는 듯한 뻑적지근함 같은 취재의 고단함이야 모든 기자들의 고충이라 치더라도, YTN사태로 서로가 상처를 주고 또 받는, 내부 갈등을 보고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YTN노사가 서로에게 제기한 고발·고소를 취하하는 내용 등을 담은 4월1일 합의가 발표되는 것을 보고, 나는 당분간 YTN 집회를 취재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봤다. 합의를 했기에 조금씩 YTN사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내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이 오판이었음을 깨닫게 된 데에는 40여일이라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가 14일오전 10시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1층에서 노조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당징계 철회 촉구 조합원 비상총회’를 열고 있다. ⓒ송선영
지난 14일, YTN에 다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렸다. 한동안 잠잠했던 YTN에 다시 ‘투쟁’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1층에서 노조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당징계 철회 촉구 조합원 비상총회’를 열어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노조원들도 지난 259일간의 훈련 때문인지 ‘투쟁’을 외치는 모습이 일상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렇다면 노조원들은 왜 다시 ‘투쟁’을 외치고 나선 걸까? 지금 YTN 안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금 노조가 투쟁을 선언하고 나선 이유는 구본홍 사장에 대한 반대 때문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구본홍 사장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깊어진 간부들과의 갈등이 주요한 이유다.

▲ 5월14일 YTN에 걸린 펼침막. ⓒ송선영
YTN은 지난 4일과 6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노사 합의에 반발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보도국 한 간부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한 이유로 임아무개 노조원에 대해 정직 2개월을, 3억4천만원이 넘는 구본홍 사장의 지출 내역 등이 담긴 회사 경영 자료를 노조에 유출한 행위를 한 이유로 지아무개 노조원에 대해 정직 6개월의 징계를 각각 내렸다.

징계를 둘러싼 노조와 인사위 사이의 주장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 징계가 정당한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되고, 정당한 과정을 통해 징계가 결정되었다면 지금처럼 내부 구성원들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을까?

지난 투쟁 과정에서 YTN사태를 가장 악화시켰던 원인인 ‘징계’가 다시 재연되었다는 점과 지난번 대량 징계를 결정한 인사위원 상당수가 이번 징계를 또 결정했다는 점에서 노조는 인사위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간부들을 ‘매파’로 규정했다. 인사위는 당초 지아무개 노조원에 대해 ‘해고’ 징계 결정을 내렸으나, 중간에 구본홍 사장이 ‘정직 6개월’로 수위를 낮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서 YTN 간부들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진정 있는지 의심이 든다. 인사위에 참여했던 한 간부는 지난 8일 통화에서 “징계와 합의는 별개”라며 “합의 정신이라고 해서 인사조차 못한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맞다. 회사 쪽 간부 주장처럼 지난 노사 합의에 ‘징계를 하지 않겠다’는 조항은 없다. 하지만 노사가 YTN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가 양보해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합의를 했다면 적어도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는 불씨는 만들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 2008년 7월22일 오전 7시 35분 경, 구 사장 출근이 임박하자 일제히 후문으로 내려온 간부급 회사 측 관계자 20명. ⓒ송선영
지난해 여름부터 최근까지 YTN사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YTN 간부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참 많이도 하셨다. 이러한 행동들은 초년 기자인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언론인으로서 곱게 늙는 것도 중요하다’라는 것을.

간부들은 노조의 ‘구본홍 출근 저지 투쟁’이 한창일 때 매일 아침 구 사장의 출근을 ‘영접’했다. 후문에서 친절하게 사장의 출근을 맞이한 이들은 때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구 사장을 감싸고 보호하기 위해 노조원들과의 몸싸움도 마다지 않는 자세를 여러 번 보였다. 세상 어느 언론사 간부들이 사장이 출근할 때마다 ‘영접’을 하러 나갈까. 이러한 광경을 볼 때마다 ‘여기가 언론사가 맞나’라는 의구심을 가졌던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간부들은 또 <미디어스>의 취재에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일부 간부들은 회사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말하기도 했으나 대다수는 회사 쪽의 입장을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입장을 말하는 간부들도 실명 박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고, ‘한 간부’로 해달라고 거듭 요청을 했다. 전화 취재에 응해주는 간부들은 대뜸 ‘노조의 불법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는 “왜 이런 것은 취재 하지 않느냐”고 대뜸 물었다. 한 간부는 ‘회사 쪽 정보를 하나 알려줄 테니 노조 쪽 정보를 알려달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들의 행동과 말이 떳떳하지 못했기에 당당하게 밝히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외부 취재기자에게 후배들의 ‘불법성’을 강조하고 지적할 만큼 노조가 미웠는지는 몰라도, 구본홍 사장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서로 안부를 주고 받는 정겨운 선·후배 사이이지 않았을까. 259일의 투쟁은, 선·후배 사이를 이렇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니 이들의 행동을 매일 지켜보는 노조원들의 속은 오죽했을까 싶기도 하다. 가끔 노조원들은 출입기자들에게 이러한 간부들의 모습을 보게 해서 미안하고, 쪽팔리다고 했다.)

▲ 2008년 9월9일 노조의 저지로 사장실 출입이 막힌 구 사장이 17층 복도에 앉아 있는 가운데, 간부들이 멀뚱히 선 채 구 사장 곁을 지키고 있다. ⓒ송선영
며칠 전 YTN 사내게시판은 ‘금도’ 논쟁으로 시끌시끌했다.

한 간부가 쓴 “최소한 언론인으로서의 금도를 지켜야”라는 제목의 글이 발단이 됐다. 그는 글을 통해 “언론사라고 하는 YTN에서 최근에 벌어진 일들은 금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고 생각한다”며 “사장 선임을 둘러싼 노조의 투쟁 이후 YTN에는 선후배간의 최소한의 예의도 법도도 없다. 오로지 노조에 찬성하는 사람은 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악으로 분류하는 노조의 이분법만이 존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노조원들의 반박 글이 이어졌다.

“10년 넘게 쌓아온 선후배 사이의 신뢰를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무참히 깨면서 금도를 무너뜨렸는지? 누가, 어떤 사람들이 권력에 기대 최소한의 언론인으로서의 양심마저 저버리는 금도를 깼는지?” (기자1)

“대통령의 언론 특보가 사장으로 온답니다. 반대하는 것이 기자로서의 금도를 지키는 겁니까? 아니면 받아들이는 것이 기자로서의 금도를 지키는 겁니까? 기자로서의 자존심은 둘째 치고서라도 후배들에게 해고와 정직 날리는 걸 아무런 거리낌 없어 하시는 분께서 ‘금도’를 말씀하시니 정말 속이 메스껍습니다.” (기자2)

간부가 말하는 ‘언론인으로서의 금도’와 노조원들이 말하는 ‘언론인으로서의 금도’는 달라도 한참 다른 듯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수십년 전, 그분들은 어떠한 언론인을 꿈꾸며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했는지, 그 첫 마음에 비해 지금의 모습은 어떤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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