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현재 대통령 선거가 43일 남았다. 허나 국민들은 누구를 선택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을 결정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답답하다.

2002년 선거를 돌아보자. 그때는 그런 싸움도 있었다. 어딜가도 노무현이냐 권영길이냐를 놓고 논쟁하는 사람들을 볼수 있었고, 이회창과 노무현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처럼 비춰지기까지 했다.

좀 차분하게 고민해볼 시점이다. 지금이라도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지, 선거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해볼때다.

이례적인 국민들의 지지로 탄생했던 이 정부는 왜 지금 바닥을 쳤을까? 왜 진보는 자신감을 잃었을까? 과연 다음 정부가 선택할 과제는 무엇일까?

이 모든 걸 생각해본 후에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해도 늦지않다. 적어도 '왜' 그 사람을 선택했냐고 누군가 물을 때 자신있게 답할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선거가 끝나고 잊는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 고민들에 도움을 줄 책들을 골라봤다.

* 더작은민주주의를상상한다/당대비평 편집부/웅진지식하우스

부제는 '민주화는 실패한 기획인가, 87년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이다. 언젠가 소설가 김훈이 미군에게 '기브미 초코릿'을 외쳐보지 않은 세대들은 미국에 대한 컴플렉스가 없고, 자신은 그것이 정말 부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6월 항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을까? 대신 현 세대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과정에 동참했었다. 10년 후 우리는 그때를 어떻게 회고 할까?
1부에서는 김우창, 최장집 교수가 '더 많은 혹은 더 작은 민주주의를 찾아서'를 주제로 대담을 벌이고, 장하준 교수는 "우리는 왜 ‘모두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지 못했나"라는 질문에 답한다. 2부에서는 임지현 교수와 박노자 교수가 '외길이 아닌 여러 갈래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벌이는 대담을 지켜볼 수 있다.

*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경향신문 특별취재팀/후마니타스

혹시나 사표낼 궁리를 하고 있을 직장인들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다. 서민들의 미래가 얼마나 어두운지를 절감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사장님 사랑해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듯 하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현 상황, 진보와 개혁에 관한 위기들을 각종 사례와 통계자료들로 제시해 심리적 압박감을 준다. 경향신문에 연재됐던 글들이라 '민주주의' 관련 도서 중 가장 쉽고 잘 읽힌다.

* 마법에 걸린나라/조기숙/지식공작소

참여정부가 밝힌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를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전 청와대 홍보수석 조기숙 씨가 쓴 글이다.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나, 대통령을 정말 이해할수 없는 사람으로 보게되는 것에도 일조했다. 책의 많은 부분이 보수언론에 대한 비판으로 할애되어 있다. 잘되면 조상탓이란 말되신 21세기 한국에는 못되면 언론탓이라는 말이 나올듯하다. 그럼에도 보수언론의 마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글에 허물이 많아도 "그래, 그래"하면서 읽혀진다.

* 여럿이함께/신영복 외 4인/프레시안북

<프레시안>이 창간 5주년을 맞아 기획한 연속 강연과 토론을 한데 엮었다. 강연에 참여한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이 정치, 사회, 경제, 언론, 통일 등 각 분야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밑줄쳐둘 만한 주요 발언들을 뽑았다.

"상품생산에 참여할수 없는 사람은 인간 자체가 부정돼 버리거든요. 신업자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상품을 만들지 못하거나 상품으로 거래될 수 없는 사람은 사람 취급 못 받는 사회. 이런 사회는 결코 인간적인 곳이 아니지요." (신영복)(28쪽)

"언론의 역할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진실창조입니다." (신영복)(54쪽)

"세계화란 결국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지배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종철)(65쪽)

"세대라는 말 자체가 중산층적 현상입니다. 운동의 중심이 된 대학생들은 이미 좋은 대학을 다니고 엘리트의 조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쉽게 기성 체제에 편집될수 있었습니다. 권력지향이 강했던 점도 더 빨리 기성 질서에 편입되고 엘리트화하는 경향을 부추겼습니다."(최장집)(114쪽)

"현재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것을 외부 요인을 불러들여 설명한다고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이런 것을 알리바이론이라고 하는데,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다른 데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고 해야할 것을 회피하거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최장집) (123쪽)

"UN사무총장이 됐다고 기뻐할일이 아닙니다. 사무총장 배출한 나라는 다 후진국 아니었습니까. 그것보다 우리가 정말 세계사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박원순)(165쪽)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개정판)/최장집/후마니타스

최장집 교수는 첫줄부터 본론을 먼저 꺼내는 센스를 발휘했다.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계급간 불평등 구조는 훨씬 빠른 속도로 심화되어 왔으며, 과거 교육과 근면을 통해 가능했던 사회이동의 기회는 크게 줄어들었다."

19세에 '서울대'로 사회이동 기회를 놓친 젊은이들이 마지막 신분상승의 수단인 '공무원' 혹은 '대기업' 티켓을 얻으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지지 않는가.

그런 움직임에서 일찌감치 도피한 사람도, 그 속에서 이유도 모르면서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책. 그 스트레스에서는 아무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정판 후기(일종의 결말 성격의 글)에서 저자는 '탈정치와 갈등회피'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읽다보면 우리 사회가 너무 일찍 닳아버리고, 너무 빨리 타협하며 사는건 아닌지하는 반성이 든다.

민주주의에 관한 책이라 정치용어가 무척 많이 나온다. 하지만 걱정안해도 된다. 설명이 쉽고 자세하게 달려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삼인

부제는 '미국의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이다.

저자는 왜 돈 없고 가난한 계층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보수정당에 표를 던지는 지를 자신의 논리로 설명하고, 진보주의자들에게 정신 좀 차리라고 당부한다. 잘난척하지 말고, 세상이 우리를 왜 몰라주나 속상해하지 말고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는 논리와 언어를 개발하라고 주장한다. 제발 보수주의자들의 말장난에 말려들지 말자고 다짐을 받는다. 뒷부분에서는 보수주의자와의 싸움의 기술도 전수하고 있다.

밑줄을 한번 그어 보자면 이런 곳에 치고 싶어진다.

"보수주의자들이 그려 내는 리버럴의 모습은 허약하고, 항상 화가 나 있고(따라서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강인하지 못해 마음이 약하며, 애국적이지 못한 데다가 충분한 정보도 가지지 못했음에도 엘리트주의적이다. " (210쪽)

번역자 유나영 씨의 후기를 읽어보니 촘스키와 스승과 제자 사이면서 언어학의 목적에 대해 전혀 상반되는 시각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논쟁을 크게 벌였단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후로 서로 삐져서 둘이 서로 말도 안하는 사이라고 한다.

*프레임 전쟁/조지 레이코프/창작과비평사

부제는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전략'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로 몸을 푼뒤 읽으면 더욱 좋다.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미국의 진보 세력이 선거에서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를 프레임의 부재 또는 실패에서 찾는다. 평범한 사람들, 심지어 진보적인 시민들까지도 공화당에 투표하는 이유는 그들이 ‘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진보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설파할 프레임을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선거전에서 어떤 문장을 쓰면 좋을지를 일일이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보, 보수 모두에게 대중을 설득하는 법, 혹은 대중이 정치권의 말장난에 속지 않는 법을 익히는데 도움이 된다.

또 저자는 이 책에서 '열두가지 덫을 피하라'고 충고했다.

이슈의 덫. 여론조사의 덫, 상세 목록의 덫, 합리주의의 덫, 어떠한 프레임 구성도 필요없다는 덫, '정책은 가치'의 덫, 중심주의의 덫, '오해'의 덫, 반응의 덫, 정보 조작의 덫, 정책 담론의 덫, 책임 전가의 덫을 말한다.

이 가운데 '상세목록의 덫'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진보주의자들은 사람들이 프로그램과 정책의 목록에 근거하여 투표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사실 사람들은 가치와 인간관계, 진정성, 신뢰, 정체성을 바탕으로 투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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