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재미. 이것은 방송을 만드는 모든 사람의 이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늘 이상을 빗나가기 마련이다. 특히 요즘처럼 방송이 재미에 심하게 치우쳐 있는 상황이라면 말을 할 필조차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말도 안 되게 예능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헛된(?) 노력들도 흔히 보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이 이상으로만 치부되는 재미와 의미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기도 하며, 그때는 티비를 보다가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한국 대표선수가 골을 넣은 것만큼의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그런 경험은 절대 흔치 않다. 그 흔치 않은 경험을 9월 12일 <비정상회담>에서 할 수 있었다.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

이날 <비정상회담>의 주요 안건은 뉴스였다. 안나경 아나운서가 상정한 안건은 “믿을 수 있는 뉴스만 전하고 싶은 나, 비정상인가요?”였다. <비정상회담>의 안건 상정의 틀이 비정상이냐고 묻는 것이기도 하지만 교묘히 그 포맷에 실은 의미가 무거웠다. 안나경 아나운서의 안건은 언론인이라면 너무도 당연히 가져야 하지만 방기된 고민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경없는 기자회가 집계하여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최근 한국은 70위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그런 속에서 뉴스 앵커가 예능에 출연해서 책임 있는 뉴스를 전달하고픈 욕심이 비정상이냐고 묻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딱히 아이러니하지도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

이후 각국의 언론의 상황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기억에 남는 말은 방송이 끝날 무렵 일본대표 오오기가 말한 두 마디였다. 오오기는 일본 언론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하며 일본 젊은이들이 언론을 비하하는 속어를 소개했다. 매스컴과 쓰레기의 합성어로 마스고미라는 말이었다. 듣고 보니 요즘 많은 댓글에서 볼 수 있는 기레기와 너무도 같은 말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공교롭게도 70위와 72위로 언론자유지수도 비슷하고, 그런 언론에 냉소하는 젊은이들의 속어마저도 똑같다고 할 정도로 닮아있었다. 싸우면서 닮아간다고 한국과 일본이 그런 것은 아닌가 싶어 괜히 오싹해지기도 했다. 들을 때는 그저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한일 간의 많은 해묵은 문제들이 좁혀지지 않고 갈등 일변도로 경색되는 것도 결국은 양국의 마스고미와 기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이번 <비정상회담>은 프랑스의 부르키니 금지에 대한 토론을 거쳐 언론에 대한 각국 젊은이들의 다양하고 날카로운 시각들을 통해, 우리가 지나고 있는 시대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웃는 가운데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이 정도면 방송이 취할 수 있는 재미와 의미의 황금률을 지켰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

이번 <비정상회담>의 안건은 손석희의 뉴스룸을 갖고 있는 JTBC라 가능했던 것이지만 거꾸로 다른 방송사들에게 던지고픈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결국 안나경 아나운서의 고민은 사실 고민이 아니라 자랑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안나경 아나운서의 안건에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내일도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클로징멘트에 매일 설레고, 힘을 얻는다는 동문서답의 대답을 해주고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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