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를 하면 가장 타격을 입는 쪽이 누굴까. 각자에 따라 ‘셈법’이 다르겠지만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라는 게 가장 상식적인 판단이다. 현재 이 후보 측이 이 전 총재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당내 화합’을 위해 박근혜 전 대표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이 후보 진영의 다급해진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

김대중 고문, ‘원색적인’ 표현 써가며 이회창 출마 비난

그런데 다급해진 쪽이 이명박 후보 측 말고 몇 군데 더 있는 것같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다. 오늘자(5일) 이들 신문을 보면 ‘이회창과의 전쟁선포’라도 한 듯 작심하고 칼럼과 사설을 게재했다. 상당히 원색적인 표현까지 동원한 걸 보면 이명박 후보 진영보다 더 다급해진 것 같기도 하다. 하나씩 감상해보자. 먼저 조선일보.

▲ 조선일보 11월5일자 34면 '김대중 칼럼'.
김대중 고문은 대선 시기 때마다 ‘00 감상법’이라는 칼럼을 게재해왔는데 이번에는 <‘이회창 출마’ 감상법>이라는 칼럼을 실었다. 좀 지겹기도 한데 이 전 총재의 출마에 대해 김대중 고문이 얼마나 ‘짜증’을 내고 있는지 그리고 ‘내심 불안해하고’ 하고 있는 지가 잘 나타난다. 가령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은 그래서 이회창씨의 출마설에 더욱 날카롭게 반응한다. 이명박씨의 문제점만으로도 걱정인데 이 틈새에 이회창씨가 끼어들어 표를 갈라 가면 상황은 끝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회창씨는 아마도 표가 분산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범여권의 ‘한 방’과 이명박씨의 ‘문제’로 인해 표가 구원투수 격인 자신에게 모아지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 있다. 이런 추정이나 추론이 아니고서는 이회창씨의 출마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다음 김 고문은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이씨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는 비판과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씨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당사자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는 표현까지 동원해가며 이 전 총재를 비난하고 있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사실 김대중 고문의 이번 칼럼은 ‘창조적’이지 못하다. 제목도 예전 것과 비슷하거니와 이전 대선을 앞두고 ‘써먹은’ 사표논리 또한 똑같이 들이댔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여기서 이회창씨가 염두에 둘 것이 또 하나 있다. 오는 26일 후보등록을 하고 나면 도중 하차와 상관없이 선거법상 이씨의 이름은 투표용지에 명기될 것이며, 이씨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를 찍은 표는 모두 무효로 처리된다는 객관적 사실이다. 이 나라의 대선은 장난도 아니며 요행수의 게임도 아니다.”

동아 조선, 사설 통해 이회창 출마 강도 높게 비난

▲ 조선일보 11월5일자 사설.
조선일보의 ‘불안함’은 사설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조선은 사설 <이회창씨, 국민의 저울에 자신의 행동을 달아보라>에서 “이씨는 두 차례 (대선에서) 모두 실패했다. 정치적 무능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면서 “이씨에게 표를 모아줬던 지지자들은 10년이란 긴 시련의 세월을 견뎌내는 것으로 자신의 그때 선택에 대한 책임을 졌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그런 이씨가 지금 다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려 하고 있다”면서 “정치지도자의 생명은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과,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 의식이다. 그게 없다면 지도자가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조선은 “이씨는 지난 두 차례 선거에서 자신에게 1000만여 표의 지지를 모아줬던 국민에 대한 신뢰와 책임감이라는 정치윤리의 저울로 이번 행동을 달아 보고 있을까”라며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가 정치윤리에도 어긋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역시 오늘자(5일)에서 이회창 전 총재 대선출마와 관련한 사설을 실었다. 그런데 ‘불안한 마음’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나 보다. 너무 ‘표가 나는’ 표현을 써가며 이회창 전 총재를 비난하고 있다.

▲ 동아일보 11월5일자 사설.
동아는 사설 <한나라당, 이회창 씨가 아니라 국민 보고 뛰어라>에서 “이제 이 전 총재가 설령 출마 의사를 접는다 하더라도 당심과 민심이 합법적으로 선택한 대선 후보를 밀치고, 자신의 대권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한국 정당사에 전례 없는 ‘쿠데타’를 기도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게 됐다”면서 “이 전 총재는 동지들이 여름 내내 비지땀을 흘려 가며 농사를 지을 때는 뒷전에서 에어컨 바람만 쐬다가 추수하려는 순간 낫 한 자루 달랑 들고 나타나 ‘내 곡식이야’ 하는 식의 염치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DJ나 이인제 씨는 적어도 그러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동아는 한나라당을 향해 이 전 총재 출마에 개의치 말고 대선에 매진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동아는 “한나라당은 이 전 총재가 어떤 선택을 하건 국민만 보고 뛰어야 한다.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 지지율은 50%를 넘고 있다”고 지적한 뒤 “한나라당이 단합하면 이 전 총재가 훼손한 원칙, 이 전 총재가 추락시킨 정치에의 신뢰를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 김두우 논설위원 칼럼에서 “최대 피해자는 문국현과 이인제”

오늘자(5일) 아침신문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중앙일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출마와 관련해 이른바 ‘조중동’ 연합전선을 구축할 만도 한데 중앙은 동아 조선과는 조금 다른 ‘온도’가 느껴진다. 중앙은 사설을 게재하지 않은 채 김두우 논설위원의 칼럼 <‘이회창 출마’의 셈법>(34면)을 실었는데 내용이 동아 조선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음과 같다.

▲ 중앙일보 11월5일자 34면.
“‘이회창 출마’는 후보들에게 엇갈린 득실을 가져다 주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굴까. 언뜻 이명박 후보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당선이 유력시되던 후보에게 위협 요소가 등장했으니 그렇게 보일 뿐이다. 오히려 다른 위기를 상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잘 관리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를 긴밀히 하고 지지층에 위기의식을 불어넣어 결집시킨다면 말이다. 이미 BBK 의혹 공세를 이회창 출마설로 희석시킨 효과를 거두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위기를 잘못 관리한다면 상쇄가 아닌 상승효과로 작용할 수도 있다.”

BBK 의혹 공세를 이회창 출마설로 희석시켰다는 부분이 이채롭다. 김 위원의 얘기를 좀더 들어보자.

“정작 피해자는 문국현 후보와 민주당 이인제 후보다. 문 후보는 지지율 10% 돌파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날벼락을 맞은 격이 됐다. 이래서는 범여권 후보 단일화의 중심이 되기는커녕 대선 후 진보세력의 구심점이 되는 것도 쉽지 않게 됐다. 이인제 후보의 꿈은 충청도의 대표성을 움켜쥐어 ‘호남+충청’ 연대를 구축하는 범여권 대선 후보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충청권에 기반을 둔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이회창씨를 ‘모시겠다’고 하니 충청권 대표성마저 빼앗길 위기를 맞았다.”

동아 조선과는 분명한 차이가 나는 ‘분석’이다. 그런데 가장 차이가 나는 건 김두우 논설위원 칼럼의 마지막 부분이다.

“세상사는 이처럼 간단하지 않다. 정치는 생물과 같아서 예상 밖의 변수가 속출한다. ‘독식의 욕심을 버려라’ ‘통합과 타협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국민의 지지는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 이회창 출마가 남긴 교훈이다. 유난히 정치력이 취약한 대선 후보들이 이 교훈을 얼마나 잘 소화해낼지 지켜보자.”

‘독설’과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하지 않고, 이회창 출마가 남긴 교훈을 ‘다른’ 대선 후보들이 얼마나 잘 소화해낼지 지켜보잔다. 동아 조선이 ‘온 몸을 던져’ 이회창 출마 저지에 나섰다면 중앙은 한발짝 떨어져서 사태를 관망하는 형국이다.

이회창 전 총재 출마에 따른 정치권의 ‘요동’ 못지 않게 보수신문의 ‘다른 셈법’과 ‘요동’을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한국 정치’의 행태를 관전만 하기에는 지나치게 퇴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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