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은 뉴스가 아니면서도 뉴스다. 뉴스가 그날 일어난 일들에 함몰되어 놓치는 중요한 일들에 대해 뉴스 대신 진실을 전하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과거 손석희를 상징하는 것이 백분토론이었다면, 현재의 손석희는 이 앵커브리핑으로 각인되고 있다.

JTBC 뉴스룸 8월31일 [앵커브리핑] "양보해다오. 사람이 울 차례다" (영상 갈무리)

8월 31일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마지막 순간 망치로 머리를 아니 심장을 두들겨 맞는 기분이 들게 했다. 늘 앵커브리핑의 끝은 고도의 은유로 긴 여운을 남기지만 이날은 유독 그 파동이 컸다. 다중의 의미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양보해다오. 사람이 울 차례다”

아는 사람은 아는 댓글시인 제페토가 남긴 댓글시 중에서도 빼어난 구절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부분이다. 손석희는 이 시를 직접적으로는 31일의 상황에 붙였지만 그 뒤로는 참 많은 일들을 생각게 하는 것 같았다. 본래 이 시에서 말한 사람이 울 차례라는 것은 매미에게 한 말이다.

그러나 2016년 8월 31일 손석희가 양보해달라고 부탁한 대상은 매미가 아니라 비였다. 8월 31일은 비가 내렸다. 그리고 1246차 수요집회가 열렸다. 또 그리고 일본에서 10억 엔의 돈이 송금된 날이기도 했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왜 손석희가 이 시구를 선택했는지 알 것이다.

JTBC 뉴스룸 8월31일 [앵커브리핑] "양보해다오. 사람이 울 차례다" (영상 갈무리)

요즘의 한국은 정말 눈만 뜨면 울어야 할 것만 같다. 두 달 간 유례없는 폭염에 시달리면서도 그 놈의 전기요금이 무서워 에어컨을 켜지 못했다고 아우성이었지만 그 아우성조차 할 수 없는, 에어컨 없이 그 폭염지옥을 무조건 견뎌야 할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그러나 겨우 두 달에 우리는 지옥이라고 했는데, 무려 1246번의 수요일과 그 이전에 지옥 속의 지옥을 경험한 할머니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닐지 모를 일이다.

그런 와중에도 권력층에서는 온갖 비리가 줄지어 발각되면서 우리가 지나야 할 터널이 폭염으로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뉴스를 끊어야 숨을 쉴 것만 같은 현실이다. 두 달 간 기승을 부린 폭염이 거짓말처럼 지나가버려 분명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됐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그 안에 갇힌 심정일 따름이다.

다시 한 번 들어봐도 이만한 보도는 없다. 온통 은유인 시어인데 어떤 뉴스보다 펙트에 충실하다. 맞다. 이 정도로 엉망이면 사람이 알아서 울어야 한다. 그러나 매미가 양보하지 않는 것처럼, 비가 또 그런 것처럼 울어야 할 사람은 울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울었을 것인데 말이다.

JTBC 뉴스룸 8월31일 [앵커브리핑] "양보해다오. 사람이 울 차례다" (영상 갈무리)

세상도 맴맴 돌아
제자리로 와버렸다
진화한 것은 욕망뿐

십칠 년 매미 같은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매미, 너도 알 필요가 있다

아직도 뭍을 밟지 못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양보해다오
사람이 울 차례다

이제 이 댓글시의 길지 않은 전부를 다시 곱씹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 다시 또 알 수 있다.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이 시를 선택했는지를.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뉴스면서 때로 시가 되고, 또 때로 고해성사가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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