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동 휘발유는 과연 휘발유였다. <복면가왕>에서 흔히 경험할 수 없었던 감성의 휘발유였다. 씨야의 메인보컬이었던 김연지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객석은 물론 연예인 판정단의 여성들은 대부분 굵은 눈물을 흘렸다. 케이윌 원곡의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는 본래 슬픈 노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곡 말고도 <복면가왕>에서 들었던 슬픈 노래는 허다하다.

그럼에도 김연지가 부른 노래에 이처럼 반응을 보인 것은 최소한 두 가지 정도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고 싶다. 첫 번째는 여자 가수가 여자를 울렸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힘든 문제다. 한두 명이라면 몰라도 연예인 판정단 거의 다가 울었다면 매우 심각한 감동을 주었다는 의미다.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

보통은 경연방식의 프로그램에서는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노래의 감성 부분보다는 기능적 부분에 더 관심을 쏟고 또 반응하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는 없다. 특히나 노래를 듣고 코멘트를 해야 하는 연예인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김연지의 노래는 그들이 평가라는 무딘 방패를 내려놓고 감성에 빠져들게 할 정도였다.

<복면가왕>을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시청했지만 이런 감정은 과거 거미가 ‘양화대교’를 불렀을 때 외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니 이것이 기준이 될 리도 없고, 그러라는 것도 아니다. 비록 가왕의 자리를 지키는 데 실패했지만 김연지의 적어도 이 노래만은 오래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

그리고 다른 하나의 의미는 경연방식의 음악예능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 한계를 고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의 예능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계기가 생길 때마다 적어도 그 의미를 되새김할 필요 정도는 있을 것이다.

경연방식의 음악예능이 가창력 위주로 갈수록 어쩌면 노래 본연과는 멀어지는 부분도 경계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그토록 엄청난 감성폭탄을 터뜨린 김연지였지만, 음악대장 시즌2를 연상케 하는 록보컬에게 생각보다 큰 표 차이로 지고 말았다. 그것이 현실이고, 경연방식 음악예능의 한계일 수밖에는 없다.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는 없지만 그 한계에 문제의식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

어쨌든 그런 가수 김연지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는 아쉬움도 남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가왕의 자리에 좀 더 오래 있을 거라 예상(혹은 기대)이 무너진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문득 음악대장의 장기집권 동안 아깝게 가왕도전에 실패했던 몇몇 가수들이 얼굴이 함께 떠올려지기도 한다. 라이브 현장에서의 특성상 록 스타일이 강할 수밖에는 없다는 점이 발라드 가수들의 또 다른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복면가왕>을 비판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순간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역시 아직까지는 유효한 <복면가왕>의 장점이라는 것이다. 김연지가 <복면가왕>만 나온 것은 아니다. <불후의 명곡>에도 나왔고, 물론 노래도 정말 잘했지만 왠지 <복면가왕>에서의 모습만큼 감동이 크지는 않았다. 가면을 쓴 가수의 알면서도 모르는 묘한 신비감이 더해진 결과일 것이다. <복면가왕>이 예전보다는 다소 주춤하는 것은 사실이고 미스터리 역시 사라진 지 오래지만, <복면가왕>만의 매력은 아직 여전하다는 것을 김연지가 증명해주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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