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최고 인기 예능 <무한도전> 멤버들은 겁쟁이들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겁쟁이여야 한다. 애초에 대한민국 평균이하라는 콘셉트로 출발했기에 이제는 바꿀 도리가 없는 일이다. 또한 그래야 예능이 좀 재밌어지기도 하니 굳이 겁쟁이를 탈피하고자 하는 멤버는 없을 것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그렇지만 11년차 <무한도전> 멤버를 했다면, 그간의 온갖 험한 도전을 통해서 이미 겁은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깊고도 깊은 <무한도전>에 대한 애정은 그들의 엄살을 그대로 믿어주기로 할 뿐이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때로는 웃어주면서도 왠지 씁쓸해질 때 또한 없지 않다. 무려 미국 LA까지 가게 된 정준하의 벌칙수행이 바로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 타기 삼종세트는 그저 영상으로만 봐도 무서웠다. 딱히 겁쟁이라 아니더라도 무섭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첫 번째로 도전했던 건물 70층에 설치된, 짧지만 유리로 만들어져 극도의 공포감을 주는 미끄럼틀은 멤버들의 실감 100%의 엄살에 잠시 더위를 잊을 정도로 오싹해질 정도였다. 물론 정준하가 역시 그들 중 최고였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그런데 두 번째 미션부터 좀 이상한 기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정준하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 경우는 정상(?)적이었다. 멤버들에게는 때마침 섭외된 걸그룹 여자친구 멤버들과 짝을 이루어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이른바 롤러코스터 듀엣가요제. 여기까지는 정말 <무한도전>다운 기발한 아이디어가 반짝였음을 때려죽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멤버들의 리액션도 일품이었다.

정준하가 문제였다. 정준하에겐 여자친구 멤버 은하와 함께 롤러코스터에서 스파게티를 먹는 별도의 미션이 주어졌다. 결과적으로 은하와 같이 미션을 수행한 것이 실수였다. 롤러코스터에 나란히 앉은 예능초보 은하는 곧이곧대로 미션에 충실했다. 최고지점에서 급강하를 할 때에도 순식간에 스파게티를 얼굴에 들이부은 정준하와 달리 거의 흘리지 않았다. 게다가 고공낙하 중에 태연히 먹방을 즐기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너무도 정직했던 미션수행의지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순간이었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과거 정준하가 짜장면을 들고 탈 때에는 정말 그런 줄 알았는데, 은하의 경우를 보니 꼭 그렇지는 않았다. 아니 진심으로 말하자면 정준하는 일부러 스파게티를 얼굴에 쏟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이후 마지막 미션인 4차원 롤러코스터를 탈 때에 좀 더 명확했다. 몸이 기울어지기 전에 먼저 팔이 움직여 요구르트를 얼굴에 쏟는 모습이 역력했다.

물론 이것도 슬랩스틱의 하나이다. 다만 그동안은 정준하가 그 고의를 시청자에게 들키지 않았을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롤러코스터이기에 정준하라도 연기에 완벽하지 못했을 만큼 무서웠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연거푸 자신의 얼굴에 음식물을 쏟아 부으면서 웃기려는 정준하의 열정은 백번 칭찬해야 옳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다만 롤러코스터라서 자연적으로 그런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은 다소 불만이다. 차라리 다른 때처럼 누군가 정준하의 고의를 지적했더라면 웃음도 더 살고, 정준하의 슬랩스틱도 괜한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정준하가 억지로 끌고 간 동반자가 겁쟁이 유재석이라 그런 정준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필 여력이 없었을 뿐이다. 거기다가 예능의 MSG라고는 모르는 예능초보 여자친구 은하와 함께한 것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은하 덕분에 스파게티를 얼굴에 쏟은 정준하의 열정이 머쓱해져버렸으니 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