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대>는 남자가 보기에는 무척이나 불편한 드라마다. 차마 드라마 속 비호감 역할의 남자들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괜히 찔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드라마라고 허투루 보면 안 될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는 이렇지 않은 남자를 찾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청춘시대>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나쁜 놈 둘 중 누가 더 최악인지, 그 정도만 헷갈릴 뿐이다. 아주 작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크지 않은 직장 안에서 매니저라는 손톱만한 권력으로 여직원을 성적으로 갈취하려는 남자. 여자 친구가 있으면서도, 하필이면 그 여자 친구의 지인을 유혹하려는 지저분한 남자. 정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최악의 경쟁자들이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

그렇지만 그 반대편에는 좋은 남자도 존재한다. 먼저 박연선 작가가 사랑하는 은재(박혜수)가 사랑에 빠진 남자 종렬 선배(신현수)가 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생을 가볍게 대하는 무개념 남자로 비쳤지만 은재와 가까워지면서 점점 괜찮아지는 남자다. 극히 평범하고, 대부분의 남자가 이런 모습일 것이다. 적어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에 수많은 사람의 억장이 무너졌어도 여전히 사랑은 변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라도 잘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 그렇지만 미세한 차이는 존재한다. 종렬 선배가 좋은 남자일 가능성은 높다.

“이제부터 니 몸은 니 몸이 아니야. 절반은 내 거야”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정도였는데, 은재가 종렬 선배의 머리를 만지자 “만져도 돼. 난 다 니 꺼니까” 한다. 보통은 반대가 아닐까 싶다. 남자가 이런 자세라면 여자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 대사는 남자들의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 함정이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

또 한 명의 좋은 남자는 다들 알다시피 키다리아저씨 박재완(윤박)이다. 안타깝기로는 이 남자가 사랑하는 윤진명(한예리)과 막상막하다. 결국에는 잘될 것이겠지만 아직까지는 갑돌이와 갑순이의 사랑일 뿐이다.

특히 윤진명이 매니저의 강압에 의해 외딴 교외까지 따라갔다가 마지막 순간에 정신을 되찾고, 독하게 마음먹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는 버스가 끊긴 대합실에서 박재완의 번호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도 전화를 걸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는, 드라마 안으로 뛰어 들어가 통화버튼을 눌러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보통 드라마라면 박재완은 윤진명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리얼리티가 넘치는 <청춘시대>에 그런 일은 없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윤진명에게 극도로 대사를 아꼈다. 신파조를 경계하려는 악착같은 인내심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윤진명의 입에서 한두 마디만 나오면 눈물이 핑 돌거나 혹은 분노가 치밀었을 것이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

대신 윤진명은 홈메이트들에게 전화를 걸어 편의점 알바 대타를 부탁한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상황에서 윤진명의 머릿속에는 매니저에 대한 분노, 박재완에 대한 애틋함, 자신이 처지에 대한 슬픔 따위가 아니라 알바를 펑크 내서는 안 된다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현실적인 문제가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윤진명이 대단히 성실하고,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감상에 빠질 여유조차 없는 윤진명의 현실을 말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도 결국은 첫 차를 타고 집이 아닌 편의점으로 간 윤진명은 편의점 구석탱이에서 구겨져 잠든 동생들을 본다. 그리고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짓는다. 혹독한 밤을 보낸 윤진명에게 보상은 그 철없는 동생들의 우정이었다. 참 아름다웠다. 다소 리얼리티는 줄었지만 그래도 드라만데 이런 희망적 허구는 있어야 않겠는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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