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비판에도 불구 박근혜 대통령은 갈 길을 간다. 2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내놓은 발언과 3일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이후 상황을 대략적으로 내다볼 수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는 최소한 개각이 이뤄질 때까지는 해결이 되지 않을 걸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에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은 신파와 새누리당 장악을 통한 통치력 강화로 일단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겨레 3일자 1면 기사

한겨레는 3일 1면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가 그의 장인으로부터 땅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차명으로 이를 보유하도록 하고 이후 형식상의 매입 과정을 통해 실명으로 전환하였다는 거다. 이 과정에서도 양도세 등 세금포탈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데, 우병우 민정수석은 이를 정상적인 토지매입 과정이었던 것으로 재산신고를 했다는 거다.

한겨레 4일자 4면 기사

그간 우병우 민정수석과 그 처가의 재산 형성 및 상속 과정에 대해 숱한 의혹이 제기됐으나 청와대는 사실상 껍데기 뿐인 특별감찰을 핑계로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한겨레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병우 민정수석이 실정법을 어겼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한겨레는 4면 기사에서 “법조계에서는 이 경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면서 진경준 검사장이 재산신고를 허위로 해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아일보 4일자 칼럼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우병우 민정수석을 정권 말까지 안고 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더군다나 본격적인 레임덕이 시작되는 상황에서는 지지율 하락 요인을 하나라도 줄이는 게 중요하다. 동아일보는 이날 지면에 장택동 기자가 쓴 <박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함의>라는 글을 실었는데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30%선이 위협받고 있고, 이게 현실화 되면 임기 말의 통치가 사실상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 글에서 동아일보는 “박 대통령이 이루고자 하는 소명을 다하기 위해선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한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며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민심에 좀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썼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동아일보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우병우 민정수석 거취에 대한 ‘정무적 결단’을 한다면 그 시기는 개각에 맞추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병우 민정수석을 경질하면 여러 정치적 효과는 차치하더라도 개각에 맞춰 진행될 여러 인사검증의 실무를 책임질 사람이 없어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책임지는 인사검증의 기능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고는 하나, 적어도 개각의 과정에서 불거질 게 뻔한 여러 의혹에 누군가는 대응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속된 말로 하자면 우병우 민정수석이 대통령을 대신해 이런 문제들을 ‘안고 가는’ 형국으로 일이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상황이 권력 누수의 정도를 가속화 하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때 아닌 ‘신파’를 꺼낸 것은 이런 현실 때문일 거다. 박근혜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저도 가슴 시릴 만큼 아프게 부모님을 잃었다”, “내게 남은 유일한 소명은 대통령으로서 나라와 국민을 각종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내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아마도 이런 발언은 대구경북 지역 유권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갖는 특별한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걸로 추측할 수 있다. 뒤집어 보면 박근혜 대통령 역시 스스로도 적극적 지지층 안에서의 정치적 저치가 매우 궁박해졌음을 체감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영남권 신공항 무산과 사드의 경북 성주군 배치라는 연속된 악재 속에서 나름대로는 비장의, 또 최후의(?) 카드를 꺼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또 대구경북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등과 만나 최근 현안에 대한 나름의 설득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게 애초 보도와는 달리 대구경북 지역구의 ‘초선’ 의원들에 한정해 일정 조율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 ‘TK초선’이라는 구분에는 4·13 총선에서 이른바 ‘진박’으로 불린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따라서 대구경북 초선 의원들과의 만남이라는 행사는 ‘의견수렴’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통령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 자리에 성주군을 지역구로 한 사드 문제의 ‘당사자’ 중 한 명인 재선 이완영 의원이 참석을 요청했으나 청와대가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건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청와대-세종청사 간 영상국무회의에서 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뤄지는 일정에 대해 비박계 인사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짚어볼 문제다. 3일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통령이 특정 지역 의원들을 만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결국 당내 친박 세력이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주영, 이정현, 한선교 의원 중 한 명을 ‘밀어주기’로 결정할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는 걸로 해석된다. 대구경북 초선 의원들과의 자리가 대통령이 전당대회에서의 ‘박심’을 사실상 전달하는 기회로 비화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거다.

김무성 전 대표는 또 주말 정도에 마찬가지로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주호영 의원과 정병국 의원이 ‘비박 단일화’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단일화가 이뤄지면 비박계 후보를 지원하겠다는 바를 명확하게 했다. 그런데 주호영 의원은 그간 ‘비박 단일화’에 대해 친박계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로 할 경우에만 이에 응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왔다. 김무성 전 대표의 발언과 이러한 정황을 엮어서 볼 때 적어도 여의도 언저리에서 이번 전당대회에 ‘박심’이 위력을 발휘할 거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는 건 사실로 보인다.

동아일보 4일자 12면 기사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2일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불똥이 새누리당 전당대회로 튈 가능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검찰은 강만수 전 장관이 산은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으로 재직하던 시기 대우조선해양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자신과 관계가 있는 기업들을 여러 형태로 지원하도록 하고, 이 기업들로부터 대가를 받아 챙겼을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의혹이 일부라도 사실로 드러나면 이명박 정부 시기 정책결정권을 가졌던 인사들에 대한 커질 것으로 생각된다.

‘비박 단일화’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정병국 의원과 주호영 의원이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문제가 어떤 형태로 ‘불똥’이 될지에 대해 추측해볼 수 있다. 임기 말에 권력누수 현상을 겪는 대통령은 언제나 전임 정권에 대한 비리 등을 수사해 위기를 탈출해보려는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면 전임 정권에서 권력을 가졌던 사람들이 타겟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매우 명백하다. 최악의 경우 여당 대표가 임기 말에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는 비극까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정권을 재창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기는 쉽지 않지만, 임기 말에 검찰이 ‘검찰은 검찰편’이란 논리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상상해보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여러 수단을 이용해 판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시키고 있는 걸로도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 큰 역할을 하며 조력하고 있는 존재가 검찰과 정보기관의 움직임을 좌우할 수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일 거라는 점은 굳이 재론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박근혜 정권의 이런 정치적 기만술이 결과적으로 그 자신에 도움이 될 것인가, 그건 별개의 문제라는 데에 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 정치를 망친 사례를 대통령이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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