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JTBC <걸스피릿>의 우승은 어차피 스피카 김보형과 베스티 유지의 대결구도일 수밖에는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되고 말 것이라면 <걸스피릿> 제작진은 정말 반성해야 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조편성을 위한 사전공연에서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왔었다. 김보형과 유지가 그래도 상위권에 들었지만, 전체 1위는 오마이걸 승희가 차지하면서 <걸스피릿>의 최종 결과는 예측하기 매우 힘들어졌다.

또한 사전경연의 순위는 결코 확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지난주 A조 경연은 사전경연과 꽤나 다른 양상을 보였다. 전체 10위를 했던 소나무의 민재가 1위로 올라섰고, 6위였던 러블리즈 케이 역시 2위에 오르면서 자존심을 회복했다. 반면 오마이걸 승희는 3위를 차지했다. 그나마 비교적 실력이 수평적이라는 A조의 경연 결과가 이렇다면, 죽음의 조로 불리는 B조는 더욱 파란만장할 수밖에 없을 거란 예상이 가능하다.

JTBC <걸스피릿>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 B조의 경연은 순위나 경연의 개념과 무관하게 정말 감상용으로 소장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해줘야 할 유지와 김보형이 명불허전의 보컬 실력을 과시했고, 기대가 매우 적었던 라붐의 소연과 에이프릴의 진솔이 사전공연 때와는 달리 분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레이디스 코드 소정이 감기로 인해 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웠다. 김보형, 유지, 소정이 트로이카로 서로 잡고 잡힐 것을 예상하고, 기대해서 B조를 죽음의 조라 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소연과 진솔이 약간의 감동코드와 기발한 선곡으로 <걸스피릿> 리스너(청중평가단)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었다.

JTBC <걸스피릿>

사전 경연에서 11위와 12위를 차지했던 라붐의 소연과 에이프릴 진솔이 죽음의 조라는 B조에서 3위와 4위로 뛰어오른 것은 예상 밖의 결과였고, 어차피 우승후보라는 유지와 김보형이라도 방심하지 말라는 경고일 수도 있었다. 최연소 참가자인 진솔은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를, 소연은 정말 의외의 선곡인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불러 리스너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다만 2차 투표 결과 레이디스 코드 소정이 올라오는 바람에 Top4에서 밀려나야 했다.

가장 먼저 무대에 선 유지는 유일하게 팝송인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 <I Have Nothing>을 선택했다. 팝송을 선택한다는 것은 감정과 기교를 살리기는 유리해도 제대로 못할 경우는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라는 점에서 양날의 검과 같다. 그러나 이 노래를 연습생 시절부터 수도 없이 불렀다는 유지는 그 익숙함 그대로 첫 순서의 긴장도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했고, <걸스피릿> 최초로 100점을 뚫는 쾌거를 거뒀다.

JTBC <걸스피릿>

물론 김보형도 만만치 않았다. 김보형이 선택한 노래는 신승훈의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이었다. 편곡이 늦게 나와 연습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김보형은 거짓말처럼 완벽한 재해석을 보였고, 경연의 필수요소인 폭풍 가창력 또한 잊지 않았다. 비록 유지의 102점에는 조금 모자란 99점에 그쳤지만 만점을 준다고 해도 아깝지 않을 무대였다.

이렇게 되자 티비 음향이 아닌 고음질의 음원으로 듣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걸스피릿>은 2회 방송부터 일부 출연진이 선보인 곡을 음원으로 출시했는데, 나머지 곡들은 저작권 협의 문제로 음원을 공개하지 못 했다고 알려졌다. 걸그룹 내 10초의 파트에 가둬주기 아까운 보컬들을 세상에 알린다는 취지의 <걸스피릿>이라면, 더 많은 보컬들을 위해 음원을 만들어주는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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