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질투에서는 썩은 냄새가 난다”

류화영이 한승연에게 독한 입맞춤을 했다. 이 장면은 <청춘시대> 3화의 결정적이고 강렬한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한참 후 강이나의 내레이션은 그 장면의 충격을 뛰어넘었다. 강이나에 대한 정예은의 질투는 충분히 드러났고 이해도 갔지만, 강이나가 질투한 대상이 윤진명(한예리)이었다는 사실 또한 충격이었다.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적어도 자본주의에 완전히 포섭된 한국 드라마에서 말이다. 작가는 <청춘시대> 3화에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이란 시를 인용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류화영의 대사로 처리된 이 말은 인용을 넘어 오마주로서의 힘을 발휘케 했다. 청춘, 그 중에서도 부조리한 청춘을 관조하는 대사가 아닐까 싶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

서로 다섯 청춘들이 부대끼고 사는 벨 에포크 셰어하우스에는 각자의 질투가 존재한다. 딱히 무엇인가 부족하고, 부러워서가 아니라 비슷한 또래라면 자신에게 없는 무엇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리현상처럼 발생하는 질투다. 딱히 여자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단지 여자라 그 스펙트럼이 좀 더 선명해질 수는 있었을 것이다.

다섯 명의 고만고만한 여대생들이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에 대형사건이 벌어졌다. 모두가 부러워 질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강이나(류화영)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강이나에게 가졌던 질투 혹은 열등감이 그 저변에 깔려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감정들을 남들 모르게 지워버리기 위해서 강이나는 더욱 나쁜 년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강이나에겐 세 명의 애인이 있다. 애인이라고는 하지만 애인이 아니다. 연애라고 하지만 연애가 아닌 일이다. 그런 강이나를 정예은의 말마따나 창녀라고 불러도 하등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왠지 정예은의 오버가 커질수록 강이나에 대한 시선이 복잡해짐을 느끼게 된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

특히 강이나가 가장 볼품(?)없는 윤진명에 대해서 갖는 질투는 강이나에 대한 간단한 시선을 거두게 한다. 강이나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 매우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윤진명에 대한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 폭주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강이나의 행동이 당사자인 윤진명에게 질투로 느껴지는 어렵다.

그래서 “너는 내가 싫은 거냐, 내 가난이 싫은 거냐?”라는 질문을 남기고 앞서 걸어가 버리는 윤진명을 향해

“부러워서 싫어. 가난하고 괴팍하고 깡마르고 볼품도 없으면서 나를 초라하게 만들어서 싫어. 질투하게 만들어서 싫어. 너처럼 되고 싶은데 너처럼 될 수 없으니까. 미워하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 냄새가 나는 거야. 내 질투에서는 썩은 냄새가 나”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

이것이 강이나를 위한 근사하게 포장된 변명일 수도 있다.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해석하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강이나를 간단하게 창녀라고 말하려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보통은 강이나를 집에서 쫓아내자는 정예은처럼 쉽게 돌을 던지자고 부추길 것이다. 하필, 정예은이 말이다. 그래서 참 흥미롭다. 작가는 강이나를 통해서 이 시대의 윤리에 아픈 풍자를 엮고 있는 것 같다.

<청춘시대>는 의외로 저조한 시청률에 시달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비운의 명작(?)이 될 공산이 매우 커졌다. 관음과 관조 사이에 위태로운 줄을 타는 이 드라마는 자주 그랬듯이 박연선 작가만의 독특한 삐딱함이 매혹적이다. 다만 공감하기에는 너무 위험할지 모를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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