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하는 드라마에는 주인공의 유행어가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하다못해 특이한 말투라도 있기 마련이다. <W>의 이종석도 예외는 아니어서 “맥락 없는”이란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서서히 시청자들은 그런 이종석의 “맥락 없다는” 시크한 푸념의 대사에 길들여지고 중독되어 가고 있는데, 그러서인지 맥락 없는 사건들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강철 스스로 오연주에게 “맥락 없다”고 한 행동을 하고, 오연주의 맥락 없는 행동은 아무 것도 아닌 엄청난 짓까지 해댄다. 이쯤 되면 맥락 없는 커플 등극이다.

아버지의 제자와 통화 중에 다시 만화 속으로 호출된 오연주는 정신을 잃은 채 윤소희(정유진)에게 발견되어 다시 강철의 팬트하우스로 옮겨졌다. 오연주가 쓰러진 이유는 과로. 그때 오연주는 단 5분 만에 두 달이 지나버린 일을 기억해내며 그럴 수도 있다며 수긍한다. 어떤 것도 가능한 것이 만화이기 때문에 묘하게 설득력을 갖는다.

MBC 수목미니시리즈 〈W〉

그렇게 다시 강철의 곁으로 돌아온 오연주지만 본능적으로 현실로 돌아가고만 싶다. 팬이긴 하지만 아직 강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머지않은 시기에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당연히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고, 과연 어떤 방법으로 현실로 돌아가게 될지 미리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 일이고, 일단은 이 맥락커플의 하는 짓이 정말 만화 같다. 대놓고 만화 속이니 개연성 따위 시비 거는 일은 불가능하다. 강철의 집요한 질문공세에 오연주는 강철의 뺨을 때리고는 느닷없이 키스를 한 이유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강철의 감정 변화가 오연주에게는 차원의 문인 셈이다.

MBC 수목미니시리즈 〈W〉

그러자 강철은 오연주에게 다가가 키스를 한다. 자기도 그래놓고서 오연주는 강철의 그런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무리 맥락 없어도 키스는 키스이니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의 키스를 이처럼 저렴하게 바겐세일을 하는 경우는 아마도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설렐 틈도 주지 않는 맥락 없는 키스는 그러나 애교에 불과했다. 계속해서 오연주의 세계에 대해서 캐묻던 강철은 권총을 오연주에게 겨눈다. 설마 쏘겠나 싶었는데 진짜 쏴버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총알이 오연주의 가슴팍을 관통해 유리에 박혔는데도 오연주는 끄떡없었다.

MBC 수목미니시리즈 〈W〉

강철은 오연주가 총을 맞아도 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깜짝 놀랄 일이다. 물론 여전히 이 사건이 만화 속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황당하지만 진짜 그럴 수 있냐는 말은 할 수가 없다. 대신 강철의 말을 그대로 믿는 수밖에 없다. 오연주가 불사신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근거는 강철의 말뿐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 드라마의 전제가 되니 시청자로서는 불만이 있어도 벙어리냉가슴일 뿐이다.

온통 말이 되지 않는 아니 맥락 없는 사건들의 충돌이 일어나는데도 그것을 따질 수 없는 묘한 상황. 이것은 또 다른 타임슬립 드라마 <나인>을 통해서 두 세계를 다루는 내공이 깊어진 송재정 작가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두 세계를 오가는 오연주의 미스터리, 만화가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만화 속 주인공 강철의 미스터리가 아주 극적으로 밝혀질 것을 기대하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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