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총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성매수를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21일 밤 10시께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2011~2013년께 이 회장의 서울 논현동 안가와 삼성동 자택에서 최소 다섯 차례 이상 성매매가 이루어진 사실을 뒷받침하는 동영상을 여러 건 공개했다. 뉴스타파는 동영상을 검증한 결과 위조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삼성은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한 일이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바로가기: 뉴스타파 <삼성 이건희 성매매 의혹.. 그룹 차원 개입?>

일각에서는 ‘사회적 수명이 끝나버린 회장님의 은밀한 사생활을 캐내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식의 이야기 또한 나올 법하다. 뉴스타파 보도가 선정적일뿐더러 이 같은 말초적인 뉴스가 우병우-진경준-넥슨 스캔들, 사드(THAAD) 배치 문제 등을 덮는 효과가 있다고도 지적한다. 그렇지만 뉴스타파의 보도를 위와 같은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적으로 그리고 저널리즘적으로 여러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뉴스타파)

우선 글로벌 기업이자 한국 최대의 재벌을 지배하는 총수일가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뉴스타파가 의혹을 제기한 대로 이건희 회장이 수차례 불법 성매매를 저질렀고 삼성이 이를 조직적으로 지원했다면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이번 보도로 삼성과 이 회장 일가는 파문 자체만으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경영권 승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나서 사과하고 입장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삼성의 처지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삼성에 대한 관심과 삼성의 언론 지배력을 동시에 확인했다. 뉴스타파 보도 직후 ‘이건희’와 ‘뉴스타파’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의 실시간검색어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이 뉴스는 반나절 만에 페이스북에서 1800여회 공유되고, 트위터에서 2400여회 리트위트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됐다.

그러나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들은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하면 기사를 쓰지 않았다. 지상파 3사, 종합편성채널, 뉴스통신사 또한 삼성의 입장이 나오기까지 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KBS는 21일 밤 기사를 썼다 돌연 삭제하기도 했다. 삼성 없이 생존하는 중소 인터넷언론은 보도하는데 주류언론은 침묵하는 모양새다. 삼성이 장악한 언론이 어디까지인지, 최대광고주와 관련된 비판적인 소식은 자기검열로 뭉개는 언론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건희 성매매 의혹 보도는 탐사보도와 독립언론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뉴스타파 리포트에는 취재진이 3개월여 동안 동영상을 검증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한 과정이 나온다. 긴 호흡으로 치밀하게 삼성을 취재한 것은 뉴스타파가 독립언론으로서 탐사보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이 있다. 뉴스타파는 동영상이 삼성을 협박하기 위해 촬영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삼성을 협박한 사람들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신뢰도를 높였다. 뉴스타파가 후속으로 어떤 내용을 보도할지 주목된다.

삼성에 대한 비판적 기사는 받아쓰기만 해도, 모든 시민이 아는 사실을 한 줄 적기만 해도 ‘용기 있는 언론’이라는 평가를 받는 게 한국의 언론 환경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지켜봐야 할 것은 삼성이 이번 파문에 대응하는 방식, 주류언론이 삼성을 비호하는 방법이다. 또 어떤 언론이 ‘면피용’으로 뉴스타파 보도와 삼성 입장을 절반씩 단순 전달하는 것을 뛰어넘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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