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언론이 나서서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는데 우병우 수석은 끝까지 가볼 모양이다. 20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내놓은 발언들을 보니 그렇다. 김정주 NXC회장,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회장, 법조 브로커로 알려진 이민희 씨 등을 전부 ‘모르는 사람들’로 지칭하면서, 검찰 수사를 받더라도 “모른다, 아니다 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거래에 관한 의혹은 전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근거 없는 의혹으로 공직자가 그만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말했다.

우병우 수석의 주장이 진실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맨 처음 제기한 조선일보의 태도를 보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날릴 때와는 좀 다른 뉘앙스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병우 수석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정도로 꼼꼼하게 취재를 했다기보다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전쟁(?)을 시작해보자는 의도가 보이는 것 역시도 사실이다. 조선일보가 18일 사설에서 “고소를 하면 검찰이 수사를 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런 맥락을 보여준다.

문제를 합리적으로 다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병우 수석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다는 가정을 해볼 수도 있다. 잘못이 없는데 언론으로부터 이런 식으로 공격당한다면 우병우 수석으로서는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그만 둘 경우 앞으로 명예회복의 기회가 없을 거라는 점에 대한 우려도 있을 수 있다. 검찰의 수사와 재판은 상당히 오랜 시일이 걸릴 가능성이 크고, 그 기간 동안 우병우 수석의 항변보다는 백화점식으로 제기된 여러 의혹들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들처럼 다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과 일부 정치권은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을 언급하고 있다. 에둘러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잘못을 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경질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거다. 이 역시도 우병우 수석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일 것이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면서 안대희 전 대법관의 별명이었던 ‘지나치게 잘 드는 칼’이라는 말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소년등과’ 이력에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지나치게 적을 많이 만들어 온 게 도화선이 된 것 아닌가, 그런 의심도 가져볼 법 하다.

우병우 수석이 실제로 부적절한 부동산 거래를 했는지 여부는 최종적으로 사법부가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자리는 재판 결과가 무죄면 남고 유죄면 내놔야 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 자리는 법의 논리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어찌되었든 정권의 정치를 책임지는 자리 중 하나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우병우 수석이 감당했어야 할 정치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병우 수석은 왜 자신을 향한 의혹제기가 이렇게 일파만파로 커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먼저 깨달아야 한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연합뉴스)

우병우 수석은 이른바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특수통’으로서의 수사기획 능력을 인정받아 여기까지 출세했다. 언론은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을 대표격으로 언급한다. 당시 사건의 핵심을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에게 잘 보이려는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과 출세에 눈이 먼 일부 경찰 공무원의 문제로 바꿔버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민정비서관이던 우병우 수석은 이때 김기춘 비서실장의 절대적 신임을 얻게 됐고, 이는 당시 김영한 민정수석이 오히려 현안 대응에서 배제되는 사태로 이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이 같은 내막은 김영한 민정수석이 국회 출석을 거부하고 경질된 이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조차 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알려졌다.

이후 우병우 수석은 정권으로부터 과도한 배려를 받았다. 검찰을 다뤄야 하는 직의 특성에도 불구 상대적으로 사법연수원 기수가 낮았음에도 민정수석에 임명된 것이다. 이는 검찰 간부들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고 했다. ‘소년등과’를 한 이력 때문에 같은 기수들 사이에서도 나이가 어려 어려움이 예고됐기 때문인지 검찰 원로인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민정특보’로 함께 임명됐다. 이것만 봐도 그를 향한 정권의 배려가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는지는 충분히 알만하다.

그저 여기까지 였다면 그나마 상황은 달랐을지 모른다. 우병우 수석은 이후 청와대가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을 완전히 틀어쥐고 사실상 지배하는 핵심 고리 역할을 자처했다. 검찰 요직 곳곳에 자기 사람을 심었고 국정원 2차장이라는 아주 중요한 자리에까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앉혔다. 당시 신동아 등은 이를 청와대가 국정원의 특수활동비에 손을 대기 위해 기조실장 인사를 뜻대로 하길 원했지만 이병호 국정원장이 이를 막은 결과로 해설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당시 ‘책임총리’, ‘책임장관’을 언급했다. 각 부처가 충분히 자기 권한을 활용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대선에서의 논란을 의식해 국정원의 정치적 독립과 개혁 역시 약속했다. 그런 약속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약(空約)이었다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 만천하에 드러났다. 장관들은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인사 위주로 허수아비를 세워놓은 것뿐이며 실제로는 중앙부처 국장 인사까지 청와대가 틀어쥐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았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현직에서 물러난 지 오래되었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을 약속하고 이를 실현할 적임자라는 이유로 다소 무리해서 강행한 인사의 결과이다. 그런데 그 인사마저도 무력화하는 비상식적 정치의 한가운데에 바로 우병우 수석이 있었다는 거다.

청와대를 우병우 수석이 좌지우지하고 있고 이에 대한 불만이 여권 비주류는 물론 이른바 친박계에서도 제기되고 있다는 ‘설’이 여의도 근방에서 때만 되면 고개를 든다. 그래서 조선일보의 이번 보도를 두고서도 이런 식의 세력 구도 설정에 기댄 이런 저런 시나리오가 시중에 나도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밀어내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게 아니라, 그런 음모론이 나도는 맥락의 진실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가 직시하고 있는 진실은 박근혜 정권의 비상식적이고 폐쇄적인 정치의 핵심을 우병우 수석이 책임지고 있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원래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걸 사명으로 한다. 언론이 무슨 의도가 됐든 자기 할 일을 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참모 등의 고위관료를 겨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병우 수석이 대통령을 잘 보좌한다는 핑계로 권한을 독점하고 전횡을 일삼지 않았다면 ‘자연스러운 일’ 때문에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청와대가 자체적인 방어에 나서지 못할 만큼 부담스러운 정국이 되지 않았을 거라는 건 분명하다. 결국은 이렇게 되기 때문에 박근혜 정권의 방식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병우 수석이 정권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스스로 결단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단은 스스로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현직 민정수석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론을 곧이 곧대로 믿을 언론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번 사태를 우병우 수석 개인의 잘잘못을 가려야 할 문제(물론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로만 보기 보다는 총체적인 정치의 실패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병우 수석의 경질, 대국민 사과,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에 대한 부적절한 불개입 선언, 전면 개각 및 청와대 참모진 교체 등의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는 문제이다. 여당이 특검 도입에 찬성하도록 길을 터주는 것도 중요하다.

원론을 통해 해야 문제가 풀린다. 더 이상 청와대와 소수의 비선권력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상황을 이끌어가는 정치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 박근혜의 시대는 아직도 1년 6개월이나 남았다. 남은 기간 동안에라도 정상적인 정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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